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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페리…모든 줄리엣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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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페리…모든 줄리엣의 교과서

입력
2016.10.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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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맥밀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으로 분한 알렉산드라 페리(오른쪽).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케네스 맥밀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으로 분한 알렉산드라 페리(오른쪽).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공연 시작 후 10여분 만에 인형을 끌어안은 줄리엣이 등장하자 객석에서 짧은 탄성과 환호가 쏟아졌다. 주름 가득한 중년의 발레리나는 14살 소녀의 눈빛으로 자기보다 젊은 유모에게 애교를 부리다 정혼자 패리스 백작 앞에서 한없이 수줍게 종종걸음 쳤다. 전세계 발레리나의 표본이 된 아치형 발등, 곧게 뻗은 다리가 하얀 조명에 빛났다. “포토샵이 아니었어!” 1막 공연이 끝난 직후, 1열 가운데 자리를 예매한 ‘금손’ 관객이 흥분해 외쳤다.

23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유니버설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기의 발레리나가 자신의 전설을 입증하는 무대였다. 이 작품을 통해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1929~1992)의 뮤즈로 기록된 알렉산드라 페리(53)는 찬란했던 젊은 시절에 비해 점프와 바트리에(다리를 차는 동작)가 낮고 느렸지만 춤과 음악, 무대를 일치시킨 연기로 이 모든 티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큰 눈을 끔뻑이며 유모에게 애교를 부리는 첫 등장, 로미오와 초야를 치른 후 정혼자 패리스의 손길에 소름 끼쳐 하는 3막 침실 장면 등 인물 내면을 드러내는 연기는 기존 무용수들의 춤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케네스 맥밀란 '로미오와 줄리엣' 1막 발코니 파두되를 추는 알렉산드라 페리와 에르만 코르네호.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케네스 맥밀란 '로미오와 줄리엣' 1막 발코니 파두되를 추는 알렉산드라 페리와 에르만 코르네호.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작품의 백미로 꼽히는 1막 6장 발코니 파두되(2인무)에서 에르만 코르네호(로미오 역)에 의지해 공중으로 솟아오른 페리는 바람을 탄 깃털처럼 가벼웠고, 첫 키스 후 나풀거리며 계단을 밟고 발코니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페리는 줄리엣 그 자체였다. 극의 절정은 약을 먹고 죽은 것처럼 가사 상태에 빠져든 줄리엣을 끌어안고 로미오가 추는 3막 파두되. 팔과 다리를 쭉 늘어트리고 힘을 뺀 채 코르네호에 의지해 추는 춤은 몸이 만들어낸 예술의 극치를 보여줬다. 작고 단단한 체구의 코르네호는 파두되에서 페리를 안정감 있게 받치다, 화려하고 탄력 넘치는 춤으로 담백한 페리의 춤을 보완했다.

특히 연륜이 빚어낸 페리의 강렬한 아우라는 존재만으로 무대의 기운을 바꾸었다. 작품을 본 무용수들이 이날 공연의 명장면으로 첫 등장과 함께 3막 침실 장면을 꼽는 이유다. 첫날밤을 보낸 후 로미오를 떠나 보내고 줄리엣은 멍하니 침대에 앉아 연인과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 “줄리엣 혼자 모노드라마를 찍어야 하는 장면”(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에서 보여준 페리의 페이소스는 이전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재능이다.

케네스 맥밀란 '로미오와 줄리엣'의 3막 침실 장면에서 연인을 떠나보낸 줄리엣(알렉산드라 페리)이 슬픔에 잠겨 침대에 앉아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케네스 맥밀란 '로미오와 줄리엣'의 3막 침실 장면에서 연인을 떠나보낸 줄리엣(알렉산드라 페리)이 슬픔에 잠겨 침대에 앉아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전설의 재림에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을 비롯해 김지영, 박슬기, 신승원 등 발레계 스타들이 모두 찾아 무용계 높은 기대를 보여줬다. “페리의 공연 영상을 보며 무용수 꿈을 키웠다”는 김지영 수석은 “자신의 전성기 춤과 비교되는 게 싫어 40대에 은퇴했다 다시 무대에 선 페리의 춤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엄청난 노력과 정신력을 보여준 공연”이라고 말했다.

줄리엣 역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의 황혜민, 강미선, 김나은이 함께 캐스팅된 이번 공연에서 페리는 26일 한번 더 무대에 선다. (070)7124-1737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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