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을 멈추고도 오랫동안 살아서 버텨야 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앞으론 90세 100세까지 살아야 하니, 20대에 대학에서 전공 하나 배우고 직업 하나 가져서야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대학도 학생들이 여러 직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문과와 이과의 장벽을 없애고 폭넓은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인문ㆍ예술 계열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의 사회진출을 돕기 위한 무동학교 교장을 맡은 최재천(62) 국립생태원장 겸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24일 이렇게 말했다. 무동학교는 취업 시장에서 이공계 출신들에게 점점 밀려나며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뜻의 신조어)고 자탄하는 인문학 졸업생을 위한 곳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생명과학, 경제경영 등 폭넓은 교육의 기회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 학교는 올 상반기에 1기 과정을 마쳤고 29일까지 2기 신입생을 모집해 내달 초 6주간의 수업을 시작한다. 강의는 서울 종로구 필운동 컬처컴퍼니 썸 강의실에서 열린다.
충남 서천군에 자리한 국립생태원장에서 근무하는 최 교수는 여러 차례 교장직 제의를 고사하다 수락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보다 요즘 학생들이 10배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일할 곳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지난 몇 년간 제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 그겁니다. 젊은이들이 준비한 만큼 일자리가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해서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사정상 매일 출근하는 교장은 아니고 명예교장이라 할 수 있죠.”
최 교수는 한국 사회에 통섭이 친숙하지 않을 때부터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을 강조한 인물로 그 자신도 생물학과 인문학을 오가며 몸소 통섭을 실천했다. 2005년 펴낸 저서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에서도 더 이상 하나의 전공분야와 직업만으로 살 수 없는 사회가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는 비단 인문학 전공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평생 직업을 여러 번 갈아타야 한다면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지금의 대학에서는 그런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통합 교육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서구의 명문 대학들이 전공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게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필수로 가르친다는 점을 들며 “대학이 학생에게 첫 직장에 들어갈 방법만 가르치지 말고 어떤 직업이든 도전해볼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최근 ‘인구론’(인문계 대학 졸업생 90%가 논다)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최 교수는 “취업을 못 한 학생들에게 인생이 첫 번째 직업으로 판가름나는 것이 아니니까 뚝심 있게 문을 두드리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무리하게 취업하려고 애쓰지 말고 대학원 등에서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도 했다.
최 교수가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평생학습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끊임없이 새로운 걸 알아가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문과와 이과로 나눠 교육하는 건 삶에서 앎의 권리를 절반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아요. 통섭은 개인에게 엄청난 풍요를 가져다줄 겁니다.”
최 교수는 국립생태원장 임기가 끝난 뒤 대학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는 “강단으로 돌아간 뒤에도 젊은 친구들이 사회 진출하는 데 기여할 방법을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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