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고의 중과실 사망
대법, 새로운 산정방식 마련
‘최대 1억’인 교통사고 위자료
다른 불법행위에 똑같이 적용
“현실 제대로 반영 못해” 지적
앞으로 기업의 고의나 중과실로 사망한 경우 유족에게 최대 9억원의 위자료가 정해진다. 법원의 위자료 산정방식 변화로 현재 진행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재판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20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사법연수원 주최로 ‘사법발전을 위한 법관세미나’를 열고 ▦영리적 불법행위는 3억원 ▦명예훼손 5,000만~1억원 ▦대형 재난사고 2억원 ▦교통사고 1억원으로 새로운 위자료 산정기준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그 동안 최대 1억원까지만 지급하는 교통사고 사망사건에 대한 위자료 기준금액을 다른 불법행위에도 똑같이 적용하면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고조됨에 따라 위자료 액수를 대폭 높이고 범죄 행위별 지급기준을 세분화한 것이다. 새로운 기준은 재판부 재량에 따라 법정에서 적극 활용될 예정이다.
여기에 법원에서 정한 특별가중인자가 있으면 위자료 기준금액을 2배로 늘리고, 추가로 참작할 가중ㆍ감경사유가 있는 경우 가중된 기준금액에서 50%까지 증액하거나 감액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예로 들면, 기업이 영리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러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힌 유형이라서 위자료 기준금액은 최대 3억원인데 ▦기업의 고의나 중과실이 있거나 ▦영리 행위로 인해 벌어들인 이익이 현저히 큰 경우 ▦물품 등의 통상적인 용도에 비춰 생명ㆍ신체의 안전에 직접적인 위험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경우 특별가중사유로 인정되므로 위자료는 6억원으로 늘어난다. 추가로 증액사유가 있으면 다시 50% 늘어난 9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명예훼손은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가 박탈되거나 저하된 경우 ▦사업자의 신용이 심각하게 저하돼 기존 영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 ▦일상생활에 영향을 줘 기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를 중대피해로 보고 기준금액을 1억원으로 정했고, 그 밖의 일반피해는 5,000만원으로 책정했다. 여기에 ▦허위사실이거나 ▦악의적이거나 영리 목적이 있는 경우 ▦인지도나 신뢰도, 전파성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인물이나 단체가 명예훼손한 경우 특별가중돼 중대피해 2억원, 일반피해 1억원으로 위자료가 배가된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땐 증액ㆍ감액 범위가 50%를 초과할 수도 있다.
항공기 추락이나 건물 붕괴 등 대형재난사고는 ▦고의적 범죄로 인한 사고인 경우 ▦부실설계나 시공, 제작에 의한 경우 ▦관리ㆍ감독에 중대한 주의ㆍ안전의무 위반이 있는 경우 ▦관리ㆍ감독기관이 운영ㆍ시공업체 등과 결탁한 경우 특별가중인자에 해당한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위자료 기준금액 2억원이 4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교통사고에서는 음주운전이나 뺑소니 사고를 특별가중인자로 정했다. 사망과 중상해 피해에 대해 받을 수 있는 위자료는 1억원이지만 음주나 뺑소니라면 2억원으로 가중된다. 다만 교통사고 관련 불법행위는 사회적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점진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새 산정방안은 우리 법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국가 경제규모, 해외 판례 등에 비추어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을 실효성 있게 보장하기 위해서 사실심 법원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여러 사정을 참작해 적정한 수준의 위자료를 산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여 마련됐다”며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하여도 적용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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