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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억 과징금 부른 한방-양방 의료기기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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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억 과징금 부른 한방-양방 의료기기 다툼

입력
2016.10.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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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의사총연합-의원협회 등 3곳

GE 등에 “한방에 팔면 불매운동”

공정위에 적발 “진료 선택권 차단”

정부는 눈치보기... 환자만 뒷전에

현대 의료기기 사용으로 진료 범위를 확장하고자 하는 한의사들과 이를 막으려는 양의사들의 다툼이 공정거래위원회 거액 과징금 처분으로까지 이어졌다. 의료진이 정작 환자 건강권보다는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게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한ㆍ양방의 적정한 의료기기 사용 기준을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전국의사총연합, 대한의원협회 등 공정거래법상 ‘거래거절 행위 금지’를 위반한 3개 의사단체에 과징금 11억3,700만원을 부과했다고 23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의협은 2009~2012년 GE헬스케어를 상대로 한의사에게 초음파 진단기기를 팔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의협은 GE헬스케어에 “한의사와 거래하면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사실상 협박 공문까지 보냈다. 더 큰 시장을 무시할 수 없었던 GE헬스케어는 이에 굴복해 한의사와의 거래를 전면 중단했다. GE헬스케어는 의협에 사과까지 하면서, 거래중단 조치 결과를 공문으로 보내기도 했다.

세계시장 1위 기업의 이 같은 결정은 다른 사업자인 삼성메디슨에도 영향을 미쳐, 삼성메디슨은 2011년부터 한의사에게 초음파 기기를 단 한 대도 팔지 않았다.

또 의협은 2011년 국내 점유율 1~5위의 진단검사 기관에 한의사들이 요청한 혈액검사에 응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한의사가 한약을 처방하거나 예후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으려 한 것이다. 전국의사총연합과 대한의원협회도 2012년과 2014년 각각 진단검사 기관들에 한의사와의 거래 거절을 요구했다.

공정위는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해야 할 의료전문가 집단이 사업자단체의 힘을 이용해 의료서비스 시장의 경쟁을 제한한 것”이라며 “한의원을 이용하려는 환자의 선택권을 차단하고 비용을 증가시키는 등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킨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공정위가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공정 경쟁을 통해 보다 좋은 진료를 제공하는 관계임을 인정한 것은 환영할 만한 결과”라고 밝혔다. 반면 의협 관계자는 “한의사가 수십 차례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 검사하고도 암을 발견하지 못해 산부인과로 보내지 않은 사례가 있는 등 무면허자가 기기를 이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반발했다.

한ㆍ양방 사이의 갈등과 견제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올 초에는 한의사협회 회장이 한의사의 골밀도측정기 사용 금지에 항의하는 뜻으로 공개적으로 측정 시연을 벌이자, 의사단체가 이를 법 위반이라며 검찰에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한의대 교육과정의 변화로 과거 양방의 영역이었던 진단기기들을 활용하는 한의사들이 늘어나면서 양측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법은 아직 사회변화에 발맞추지 못해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태고,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범위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며 관련 단체들의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국민의료 향상을 위한 의료현안 협의체를 통해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협의를 하려 했으나 중단됐다”며 “논의를 재개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고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환자들의 건강권은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없다는 흑백논리만 고집할 게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범위와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의사들이 교육을 받아서 기기를 쓸 수 있다는 주장은 반대로 한의사 등도 교육만 받으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환자 진단을 위해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부분은 환자 편의 등을 고려해 허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현대 의료기기는 환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의사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역에서 사용하는 게 안전성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사회적 논의를 거쳐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게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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