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근로자가 생전 장해등급 판정을 못 받고 숨졌더라도 유족의 장해급여 청구 자체가 거부되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장해 판정을 받지 못하고 숨진 근로자의 가족에게도 급여를 받을 길이 열렸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진폐증으로 사망한 탄광 근로자의 딸 이모씨가 “장해급여를 줄 수 없다는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의 아버지는 진폐증이 원인인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2010년 10월 숨을 거뒀다. 이듬해 3월 이씨는 공단에 장해급여를 청구했지만 공단으로부터 “고인이 진폐 정밀검진을 통해 장해 판정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자 소송을 냈다.
쟁점은 장해등급을 받지 않은 근로자에게도 장해급여 청구권이 발생하는지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57조)에는 ‘장해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치유된 뒤 신체 등에 장해가 있는 경우에 지급된다’고 규정돼 있다.
1ㆍ2심은 “상속인이 장해급여를 받을 권리는 장해등급 결정이 내려진 뒤에야 발생한다”는 취지로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옛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21조)에 따라 공단이 결정하도록 돼 있는 ‘장해급여 지급 여부와 지급 내용 등’에는 장해등급 결정도 포함된다”며 장해급여 청구를 받은 공단이 심사를 통해 지급 여부를 결정하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관련 법 시행규칙은 공단이 정밀진단 결과를 받으면 이후 진폐심사회의의 심사를 거쳐 장해 정도를 판정하도록 하고 있으나 재판부는 이러한 규정이 “법령상 위임의 근거 없는 공단 내부적 절차”라며 “공단은 (생전 정밀진단과 상관 없이) 장해급여 요건과 함께 장해등급도 아울러 심사해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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