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의욕이 부른 참사였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배치해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강력 대응하려던 우리 정부의 구상은, 미국측의 미온적인 태도에 막혀 끝내 제동이 걸렸다. 우리 외교ㆍ안보라인은 석연치 않은 발언으로 일관해, 미국의 방위공약인 확장억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불을 지폈다. 윤 장관은 19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에서 외교ㆍ국방장관(2+2)회의를 마친 뒤 전략자산 배치와 관련한 질문에 “미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 같은 문제는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협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두려워하는 전략자산을, 주둔과 사실상 같은 의미인 상시배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윤 장관의 발언에 20일 한미 국방장관 회의체인 SCM을 앞두고 워싱턴에 모인 취재진은 술렁였다. 전략자산 배치는 국내에서도 요구가 빗발치던 사안이었다. 이날 밤에는 국방부 고위 당국자까지 나섰다. 그는 “붙박이로 와 있는 상시 배치가 아니라 정확히는 상시 순환배치”라고 윤 장관의 발언을 확인했다. 미 전략자산을 한반도와 인근 해역ㆍ상공에서 돌아가며 운용해 주한미군 기지에 1년 내내 상주하는 효과가 있다.
이 당국자는 “전략자산의 일시 전개에 시간이 많이 걸려, 우리 국민들은 피부에 와 닿는 조치를 원한다”며 “한미 국방장관은 SCM에서 이 문제를 포함한 여러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국 실무진이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를 최적의 방안으로 합의해 건의한 만큼, 최종적으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동의라는 형식적 승인절차만 남은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태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에서 SCM을 마치고 기자회견이 시작되려는 순간까지도 ‘공동성명’이 배포되지 않았다. 올해 48회째를 맞은 SCM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기자회견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을 통해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를 포함해 많은 방안들이 검토될 것”이라고 짤막하게 언급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합의가 아닌 검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공동성명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1시간이 지나 공개됐다. 한미 양국이 문구 수위를 놓고 진통을 겪은 탓이다. 하지만 문구 어디에도 ‘전략자산의 배치’는 없었다. 이에 국방부는 “‘확장억제의 추가적인 조치들’이라는 표현에 전략자산 배치도 포함된 것”이라고 강변했다. 심지어 한 장관은 “특정방안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국방부의 이런 논리는 지난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논란이 한창일 때 ‘전략적 모호성’을 강조하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는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를 무시하다가 이후 사드 사태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국방부가 이처럼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번 문제가 정권 교체기 미 행정부의 선택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탓이 크다. 미국으로선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고정적으로 투입하면 비용은 물론이고 전세계를 상대로 한 군사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는데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차기 정부로서도 이는 달갑지 않은 사안이다.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할 우려까지 있다.
미국은 전략자산 3총사인 B-1폭격기 60여대, B-2스텔스폭격기 20여대, B-52장거리폭격기 80여대를 운용하고 있다. 이중 일부는 아태지역을 겨냥해 미국령 괌에 전진 배치한 상태다.
워싱턴=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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