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형 주거를 일컫는 ‘마이크로 하우징’(Micro Housing)이 전세계 주거문화를 빠르게 탈바꿈시키고 있다. 마이크로 하우징은 주거면적을 극단적으로 최소화해 매매나 월세 등 집값을 대폭 줄이면서도 최적화된 개인별 맞춤형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개념이다. 마이크로 하우징은 이에 따라 살인적으로 집값이 치솟는 도심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들한테 새로운 주거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마이크로 하우징이 결국 영세 거주자들의 베드타운으로 변질돼 지역 슬럼화를 부추기고 사회구성원 간 단절만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구서 본격화하는 마이크로 하우징
전세계 도시들 중에서도 집값이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는 올해 초 극소형의 마이크로 아파트인 ‘카멜 플레이스’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늘어나는 주택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2012년 7월부터 착수한 ‘마이크로 유닛 하우징’(Micro Unit Housing) 프로젝트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9층짜리 건물인 카멜 플레이스는 평균면적 약 24㎡(약 8평) 규모의 초소형 아파트 55개로 구성됐다. 긴 볼펜 형태의 구조를 지닌 아파트는 12인용 식탁으로 펼 수 있는 책상과 벽 안에 내장된 침대 등 접이식 가구를 배치하고 기본적인 주방기기와 소형 욕실만을 갖춰 공간효율을 극대화했다.
뉴욕시는 카멜 플레이스의 아파트 한 채 렌트비를 주변 시세의 절반인 월 1,500달러로 책정하고 저소득자들을 대상으로 분양을 시작했는데, 약 6만명이 아파트 입주 추첨에 참여하는 등 뉴욕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빌 드블라시오 현 뉴욕 시장은 최근 “카멜 플레이스는 안전하면서도 좋은 거주 환경을 제공한다”며 “마이크로 하우징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 하우징은 시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뉴욕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 시애틀, 클리블랜드 등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올해 들어 마이크로 아파트 건립이 승인됐고, 시애틀에서는 면적 18㎡ 크기의 마이크로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미국 뉴욕과 함께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 런던에서도 25층 규모의 마이크로 아파트인 ‘브릴 플레이스 타워’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영국 BBC방송은 마이크로 하우징과 관련해 “일부 런던 시민들은 아예 템스 강 변에 거주용 선박을 구입해 생활하기도 한다”며 “런던 시내 평균 월세가 약 2,260파운드(약 450만원)에 달하지만 주거용 보트는 월세가 700파운드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경제불황이 마이크로 하우징 배경?
마이크로 하우징이 인기를 얻는 것은 단순히 집값이 저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뉴스위크는 “마이크로 하우징에 숨겨진 의미는 젊은 세대들이 원하는 진정한 주거는 집 안의 공간이나 시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카페와 술집 등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집 밖의 도시에 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뉴욕 중심가에 살면서 언제든 원할 때 뉴욕의 다양한 볼거리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면 젊은 세대들은 얼마든지 집의 비좁은 공간과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마이크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제이슨(30)은 “뉴욕에서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내 집 안이 아닌 집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경제불황에 따른 비혼 증가와 이혼 가정 급증,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밀려드는 노동자 등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마이크로 하우징은 도시 주거문화의 대안으로 빠르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 실제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전체 가구 중 약 30%가 1인 가구인 것으로 집계됐다. 싱글족이 많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약 50%에 달하는 상황이다. NYT는 “급증하는 1인 가구에 비해 주택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마이크로 아파트는 젊은이들에게 합리적 비용으로 뉴욕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 하우징은 슬럼의 온상?
마이크로 하우징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이 분명 많지만 일각에서는 일본과 러시아 등 과거사례를 언급하며 마이크로 하우징의 성공 가능성과 지속 여부에 부정적인 의견들도 제기하고 있다. 마이크로 하우징의 시초는 사실 일본이다. 일본 유명 건축가인 구로카와 기쇼(黒川紀章)는 1972년 일본 도쿄 긴자에 지상 13층 규모의 마이크로 아파트인 ‘나가킨 캡슐타워 호텔’을 지었다. 나가킨 캡슐타워 내 각 방의 전체 규모는 9㎡(약 3평)에 불과하다. 미니 자동차와 미니스커트 등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던 70년대 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집값이 비싼 도쿄에서 가난한 젊은이들과 회사원들에게 거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건립됐다.
하지만 약 40년이 지난 지금 나가킨 캡슐타워는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관광명소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설은 노후화돼 뜨거운 물조차 나오지 않고 캡슐타워 내 방들은 지역 주민들의 창고나 시간제 노동자들이 잠시 쉬는 공간으로 변질돼버렸다. 나가킨 캡슐타워를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게 시설을 현대화하는 것보다 예산이 적게 들어 훨씬 낫지만 관광명소로 남겨두자는 지역 여론 때문에 지금까지 허물지 못했을 뿐이다.
나가킨 캡슐타워가 주민들에게 외면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캡슐타워는 사실 쾌적하게 거주하기에는 지나치게 좁고 불편하다”며 “혼자 사는 젊은이들을 빼고는 가족을 꾸리거나 누군가와 함께 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건축 전문가들은 “침대에 누울 공간을 제외하고 막대기 같이 서 있어야 하는 마이크로 아파트는 인권침해적 요소까지 있다”며 마이크로 하우징이 새로운 주거문화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고개를 젓고 있다. 뉴스위크는 “영세 거주민들이 마이크로 아파트로 몰려들면 결국 그 주변 지역은 슬럼화되고 낙후될 수밖에 없다”며 “다만 마이크로 하우징이 분명 새로운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현상인만큼 앞으로 지켜볼 가치는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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