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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남자가 어때서? 나는 나일 뿐"

입력
2016.10.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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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가 장난이 아닌데? 로션 하나 바꿨을 뿐인데."

2002년 축구선수 안정환과 배우 김재원이 서로의 피부를 바라보며 "남자도 피부의 잡티를 제거해야 한다"고 설파했던 광고 멘트다. 이 광고는 '꽃미남'의 첫 번째 기준으로 피부를 제시했고 남자도 컬러로션(BB크림)을 발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렇게 한국 남자들은 BB크림을 알게 됐고 화장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남자와 화장은 가까운 듯 하면서 먼 관계다. 그루밍족(꾸미는 남자)은 꾸준히 늘어나지만 남자들에게 권장되는 화장품 종류는 아직도 BB크림이나 마스크팩 등이 전부다. 현대 화장술의 힘을 빌어 색조 메이크업으로 조각 같은 얼굴을 만드는 것은 아이돌 그룹 멤버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화장하는 남자’도 대세가 될 수 있을까. 화장은 여성만의 것이라는 생각은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생각만큼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성 역할을 규정짓는 것일 수 있다.

금남의 구역이나 다름없는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즐기는 것을 널리 알리는 남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의 뷰티채널에서 활약하는 남성 뷰티크리에이터 레오제이, 문군, 후니언, 임파, 화니 등 5명을 만나 남성의 화장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들어봤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뷰티크리에이터 임파는 메이크업을 기술을 통해 ‘못생긴 남자에서 흔한(평범한) 남자로 변화한다’는 모습을 재치 있는 영상으로 담아 내 인기를 얻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뷰티크리에이터 임파는 메이크업을 기술을 통해 ‘못생긴 남자에서 흔한(평범한) 남자로 변화한다’는 모습을 재치 있는 영상으로 담아 내 인기를 얻었다. 유튜브 영상 캡처

“난 화장하는 남자”

유튜브에서 1인 미디어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는 인기를 누린다. K뷰티의 활약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는 뷰티 영역에서도 씬님, 라뮤끄 등 여성 뷰티크리에이터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여기에 최근 1년 사이 남성들이 뛰어 들었다. 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참고 삼아 제품 활용법을 설명해주는 영상은 물론이고 재기 발랄한 메이크업을 실험하거나 이 과정을 보여주는 튜토리얼(Tutorials) 영상 등으로 인기를 끈다.

이들은 어떻게 화장에 빠져들었을까. 현재 남자 뷰티크리에이터 가운데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레오제이(본명 정상규·25)가 화장에 눈 뜬 것은 우연이었다. 그는 “중학생 시절 여드름이 고민거리였는데 여학생들의 화장기술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메이크업 노하우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4명의 뷰티 크리에이터들도 같은 대답이었다. 이들 역시 화장을 외모 콤플렉스를 가리는 도구로 활용하다 매료됐다. 문군(본명 문성식·27)도 “쇼호스트가 되기 위해 면접을 보려면 미용실을 찾아가 메이크업을 해야 했는데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내 외모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법을 찾으려고 스스로 메이크업을 하다 보니 화장기술이 늘었다”고 말했다.

화니(본명 김지환·24) 역시 사춘기 시절 여드름을 가리는 법을 찾다가 화장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화장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찾아보고 싶은데 남자들을 위한 정보가 적었다”며 “내가 직접 배우고 연구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다”고 말했다.

※ 뷰티크리에이터 5인의 다양한 생각은 영상 인터뷰를 통해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화장하는 남자가 어때서

'화장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것처럼 화장대에 앉는 모습을 해서는 안 될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레오제이는 “초기에 메이크업 동영상을 올릴 때 부모님께서 화장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꼭 알려야겠냐고 말리셨다”며 “안정적 직장 대신 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셨지만 지금은 지지해주신다”고 말했다.

대체적으로 날 선 시선을 던지는 이는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화니는 “화장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본 남자친구들이 ‘기생오라비’라고 놀리거나 ‘관심종자(관심 받고 싶어하는 사람)’라고 비난했다”며 “여자친구들은 오히려 화장품을 소개해 주며 응원해 줬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화니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 화장품을 몰래 발라서 화장을 하는 모습을 부모님이 새삼스러워하지 않으셨지만 영상으로 공개하는 것은 꺼리셨다”며 “지금은 팬이 늘어나면서 가족들도 격려하고 조언해준다”고 말했다.

대중들의 반응도 이들이 만든 다양한 영상만큼이나 제각각이었다. 후니언(본명 박상훈·24)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욕설과 함께 ‘남자가 왜 화장하냐’ ‘게이 아니냐’며 비난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며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얼굴에 맞는 화장법을 찾아 직접 바뀐 모습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임파(본명 임태현·25)는 “처음 만든 영상의 주제가 ‘못생긴 남자도 메이크업을 통해 잘 생길 수 있다’였는데 남자들이 직접 사회관계형서비스(SNS)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며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화장이 여성들만의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있다는 보람이 크다”고 설명했다.

남성 뷰티크리에이터인 레오제이는 전문가 못지 않은 화려한 화장술로 유명 연예인이나 캐릭터들을 묘사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화장 전 모습, 걸그룹 투애니원의 멤버 씨엘, 베트맨의 악역 조커,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탑의 화장법을 재연한 모습. 유튜브 영상 캡처
남성 뷰티크리에이터인 레오제이는 전문가 못지 않은 화려한 화장술로 유명 연예인이나 캐릭터들을 묘사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화장 전 모습, 걸그룹 투애니원의 멤버 씨엘, 베트맨의 악역 조커,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탑의 화장법을 재연한 모습. 유튜브 영상 캡처

“남자가 화장해도 괜찮아요”

그렇다면 화장하는 남자들을 왜 삐딱하게만 보는 것일까. 뷰티 크리에이터들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식으로 성 역할을 규정하는 잘못된 고정관념 탓이라고 주장했다. 후니언은 “평소 말투와 제스처가 여성스러운데 일상생활에서 화장을 진하게 하니 사람들이 부담스럽다고 말해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남자다움이란 말투나 몸짓처럼 외형적 요인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남자다움은 당당함”이라며 “화장과 유머라는 재능을 살려 영상을 만드는 게 내 일”이라며 “자기 일에 당당하면 남자다운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레오제이 역시 사회에서 학습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문제로 봤다. 그는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는 것이 나와 맞지 않았다”며 “나는 화장으로 내 콤플렉스를 감추고 장점을 살리며 자신감을 되찾는 게 내 남성성을 살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이들은 모든 남자가 화장할 필요는 없지만 화장을 원하는 남자들에게 ‘화장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자존감과도 연결된다.‘외모 콤플렉스’로 무너진 자존감 회복에 화장이 도움을 주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레오제이는 “예컨대 내 눈썹은 산이 뾰족해 ‘화난 인상’이 강했는데 눈썹을 일자 모양으로 다듬었더니 인상이 순하게 변했다”며 “메이크업은 외모의 장점을 찾아주면서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자도 화장하는 시대가 왔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뷰티크리에이터들. 이들은 화장에 대한 애정이 굳건했다. 그렇다 보니 "여성스럽다"는 핀잔을 넘어 "게이 같다"며 딴지를 걸거나 "고추를 떼라"는 막말쯤 웃음으로 흘려 버린다. 대신 이들은 “남자들의 칙칙했던 피부가 BB크림 덕에 환해진 것처럼 이제 색조화장의 마법을 만나 다채로운 개성을 경험할 차례가 왔다”고 강조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박고은PD rhdms@hankookilbo.com

한설이 인턴PD, 최유경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3)

화장을 사랑하는 남자 뷰티크리에이터들이 모였다. 왼쪽사진부터 임파, 화니, 레오제이, 후니언, 문군. 박고은PD rhdms@hankookilbo.com
화장을 사랑하는 남자 뷰티크리에이터들이 모였다. 왼쪽사진부터 임파, 화니, 레오제이, 후니언, 문군. 박고은PD rhdm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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