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나 만두나, 그리 어려운 발상이 아니다. 밀가루나 곡물을 빻은 가루를 물에 개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든다. 어떤 것은 손으로 뚝뚝 떼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동그랗게 굴려보기도 하고, 또 납작하게 밀어 모양을 잡는 것 또한 다 대단한 발명이 아니다. 밋밋한 반죽 안에 뭔가 맛있는 것을 넣어보는 아이디어 역시 기발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국수와 만두는 어딜 가나 틀림 없는 한 짝이다. 파스타의 나라 이탈리아에는 스파게티도 있지만 납작한 만두 모양의 라비올리와 참외배꼽 모양의 토르텔리니도 있고, 우동의 나라 일본에는 교자가 있다. 몽골 벌판의 맛을 보러 동대문 몽골타운에 갔더니 볶은 칼국수 ‘초이왕’과 양고기 군만두 ‘호쇼르’가 함께 나왔다. 칼국수며 소면을 뽑아 먹는 한국에도 물론 지역별로 특색이 다른 만두가 발달했다. 비단 밀 문화권만의 일도 아니다. 쌀국수의 나라 베트남에서도 만두는 당연한 음식이다. 전병에 만 형태부터 라비올리를 닮은 것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국수요, 만두는 어디에나 있다.
뜨끈한 만두 한 입이 주는 위로
만두가 뜨겁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설날 둘러 앉아 빚는 못 생기고 귀여운 만두, 일본식 주점 붐이 일던 시절 테이블마다 기본 메뉴인 양 올라 있던 일본식 군만두, 중국음식 먹을 때 빠지면 서운한 군만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시장통 찐 만두, 급한 대로 한 끼 때우는 분식집 만두, 늦은 밤 혼술의 친구가 되어 주는 전자레인지 냉동만두까지…. 유행이 변할지언정 만두는 만인이 선호하는 메뉴다. 허나 최근엔 그 중에서도 고소한 육즙이 찰랑이는 중국만두가 유독 뜨겁다.
서울 연남동 등 중국 식당 밀집 지역이나 가야 먹을 수 있던 중국만두는 전문점이 늘어나며 일상의 진미로 자리 잡았다. 일부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혜성 같이 등장한 수원의 만두집 ‘연밀’이 성지 순례의 대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수원행 광역버스에 오르는 만두 미식가들의 모습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냉면 마니아들이 의정부며 판교, 광명으로 참배를 나섰던 고난의 여름 풍경이 우리에게 있었으니.
미식가들 열광하는 중국만두 순례
다시금 강조하지만 만두의 발명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과학 천재들이 발명한 전구나 내연기관처럼 난이도가 높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세계 곳곳에 자연발생적으로 만두가 생겨났는데, 땅덩어리 넓은 중국쯤 되면 같은 나라에서도 만두가 제 각각이다. 지역마다 개성이 출중하고 종류는 셀 수 없다.
서울 가로수길에서 딤섬으로 이름난 ‘쮸즈’ 오너셰프 이병주씨는 베이징에서 유학하고 해외 곳곳에서 중식 경험을 쌓은 후 한국에 돌아왔다. 가로수길에 조그만 딤섬집을 차린 것이 지난해의 일이다. 그가 설명하는 바로는 중국만두도 남과 북으로 나눠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만두는 크게 베이징, 톈진 등 북쪽, 상하이, 광둥 등 남쪽으로 스타일이 나뉘어요. 북쪽 만두는 찐빵 모양으로 동그란 ‘바오쯔’, 한국만두 같은 반달 모양의 ‘자오쯔’가 대표적이죠. 남쪽 만두는 한 입 크기로 작은 것이 특징이에요. 가벼운 점심식사를 뜻하는 ‘딤섬’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만두인데 종류가 100가지도 넘어요. 타피오카 전분을 사용해 투명하고 얇은, 쫄깃한 피를 주로 사용하죠.”
제주도 고기국수, 부산의 돼지국밥이 꼭 그곳에 가야만 먹는 것이 아니듯, 중국에서도 만두를 먹는다 하면 남북의 만두를 한 상에 두고 먹는다. 한국의 중국만두 전문점들에서도 지역감정 없이 가장 맛있는 만두만 공평하게 모아놨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빈번히 회자되는 중국만두 전문점들을 찾아 봤다. 하나 같이 시판 만두피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반죽을 친다. 만두 소 역시 각각의 비법으로 부드럽게 버무려 한 알 한 알 손으로 예쁘장하게 오므린다. 정성스러운 맛이요, 포근한 위로다. 찬 바람이 많이 분다. 만두가 제철이다.
쮸즈
젠트리피케이션을 마치고 완연한 상업지구로 거듭난 가로수길에서 저렴한 가격대의 맛집으로 이름난 곳. 명성에 걸맞게 한 시간쯤 줄 설 각오는 하고 가야 한다. 협소한 공간에서 하루에 400개 가량만 만드는 이 집 만두는 작고 귀여운 남쪽의 딤섬 스타일이다. 돼지껍데기와 닭발 등 젤라틴이 듬뿍 든 식재료를 우려내 기름을 제거하고 굳히면 묵처럼 되는데, 쮸즈에서는 이 묵을 완제품으로 대체하는 대신에 정석대로 부지런히 만들어 만두 안에 넣는다. 중국만두의 가벼운 피를 슬쩍 뜯으면 흘러나오는 육즙의 비결이다. 소룡포와 김으로 싼 창의적인 쇼마이 외에도 딴딴면, 우육면 등 면 메뉴에도 고루 강점을 보인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17길 9.
화상손만두
이 집에서는 줄 서는 것이 당연하고, 마음에 품었던 만두가 진작에 매진되어 못 먹게 되는 일이 당연하다. 상호 그대로 화상(華商)이 손으로 만드는 만두는 진작부터 유명세에 올랐다. 손꼽히는 메뉴는 만두를 넓적하게 빚어 바삭바삭하게 튀겨 내는 튀김만두. 고기 맛이 듬뿍 들어간 교자 만두 역시 발군이다. 만두전문점이지만 마파두부밥, 잡채밥 등 식사 메뉴, 오향장육과 깐풍기 같은 요리 메뉴 역시 고루 맛이 좋다. 심지어 평균 물가보다도 한 계단 저렴한 가격까지 겸비했다. 이대 앞 터줏대감인 민주떡볶이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신흥 강자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1안길25.
미스터서 왕만두
화상손만두와 골목 하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만두 전문점. 만두와 괜찮은 궁합인 짬뽕국물 스타일의 해물탕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메뉴가 모두 만두다. 군만두는 손 대면 터질 것처럼 바삭바삭한 피가 일품. 부드럽고 도톰한 피 안에 육즙을 꽉꽉 채운 소룡포는 숟가락 위에서 피를 찢고 흘러나온 육즙을 후루룩 마셔보길 권한다. 그 온도가 중국만두의 결정적 순간이다. 이대생들뿐 아니라 중국 출신 유학생들도 즐겨 찾아와 끼니를 해결하는 집이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로16.
바오쯔
지하철 2, 6호선 신당역과 5, 6호선 청구역에서 10여분 걸어야 하는 외진 위치다. 아파트 앞 상가건물에 자리잡은 이 집은 상호부터가 바오쯔다. 메뉴는 어른 주먹만한 킹바오쯔, 아이 주먹 사이즈의 리틀바오쯔가 당연히 간판 메뉴다. 거기에 교자와 빙화만두(만두를 굽다가 묽은 밀가루물이나 전분물을 부어 성긴 레이스 모양을 낸 것) 스타일로 나오는 군교자, 딤섬과 찐빵, 만두국 등을 한다. 메뉴는 순한 맛과 매운 맛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매운 맛은 김치 만두와 다르다. 매운 맛에 날카로움이 없이 부드럽다. 5년 전 동네 장사로 시작해 대학로에도 분점을 냈다. 서울시 중구 다산로34길 41-2.
구복만두
숙대입구역 구복만두에는 특별한 만두가 있다. 중국 장쑤성 출신의 사장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를 한국에 맞춰 변형한 것이다. 그래서 대표 메뉴 이름에도 전통을 강조했다. 빙화만두로 구워 나오는 구복전통만두다. 다른 만두집의 소가 돼지고기를 위주로 해서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끌어내는 데 비해 이곳의 만두는 고기 반, 채소 반이다. 만두 소에 들어가는 재료가 16가지에 달한다. 섬세하게 잡은 맛이다. 만두피 반죽 하나도 쑥으로 훈연해 쓸 정도로 보이지 않는 정성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 집을 빛나게 하는 것은 주인 내외의 온화한 말투와 기품 있는 접객 태도다. 서울 용산구 두텁바위로 10.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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