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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에 방탄조끼 1벌뿐... 예고된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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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에 방탄조끼 1벌뿐... 예고된 참변

입력
2016.10.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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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소리 들린다’ 신고했지만…

최초 폭력사건 신고로 현장 출동

경찰 뒤늦게 방탄조끼 착용 연락

입었어도 다른 동료가 위험 노출

2. 방탄조끼 착용 매뉴얼도 없어

마지막 생명줄인 방검복도 부족

착용 여부도 개인의 재량에 맡겨

“현장 경찰에 보호장비 지급 시급”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사제총기를 발사해 경찰관을 숨지게 한 성모씨가범행 직후인 19일 오후 서바이벌 게임용 방탄조끼를 입은 채 경찰에 검거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사제총기를 발사해 경찰관을 숨지게 한 성모씨가범행 직후인 19일 오후 서바이벌 게임용 방탄조끼를 입은 채 경찰에 검거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19일 발생한 오패산터널 총기난사 사건 당시 범인이 “사제 총기를 들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출동한 고 김창호 경위는 방탄복과 방검복 등 보호 장구를 전혀 착용하지 않아 참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을 안이하게 판단한 경찰의 안전조치가 미흡했던데다 돌발 상황에 대비한 예방 대책도 없어 일선 경찰관들이 강력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20일 서울 강북경찰서에 따르면 김 경위는 전날 오후 6시26분쯤 피해자 이모(67)씨가 직접 한 첫 신고를 듣고 출동했다. “머리를 쳐서 피투성이다”라는 폭력사건 신고를 받은 그는 보호기능이 없는 외근조끼만 입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관할 번동파출소에 “범인이 사제 총을 갖고 있고 총소리도 들린다”는 추가 신고가 들어왔다. 이 때 상황실이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안전조치를 강구했어야 하지만 상황이 긴박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경찰은 뒤늦게 현장 출동자들에게 방탄복을 착용하라는 무전 연락을 했으나 이미 김 경위는 총에 맞아 쓰러진 뒤였다.

설령 방탄복을 챙겼더라도 총기 피해를 막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사건 당시 번동파출소에 비치된 방탄조끼는 단 1벌. 김 경위가 방탄복을 입었다면 다른 동료가 위험에 노출됐을 거란 얘기다. 강북서 생활안전과 관계자는 “경찰서가 보유한 방탄복도 6벌에 불과해 관할 지구대ㆍ파출소에는 장비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방탄 조치를 누락해 경찰관이 희생된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경기 화성에서 발생한 엽총난사 사건 때도 형과 형수를 살해한 70대 남성이 쏜 총에 맞아 파출소 출동 경찰관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당시 방탄복이 ‘대 간첩작전 및 대 테러장비’로 분류돼 파출소에는 아예 지급되지도 않았다. 경찰청은 이 사건 직후 기동타격대가 쓰는 방탄복 1,001벌을 부랴부랴 수요가 많은 일부 지구대ㆍ파출소에 넘겨줬다. 그러나 전국 2,000여곳에 달하는 치안시설에 모두 보급될 수 없을뿐더러 이마저도 2002년에 제작돼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울 한 지구대 경찰관은 “우리 지구대에도 방탄복이 한 벌 있지만 무게가 10㎏이 넘어 착용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더 큰 문제는 방탄복 착용과 관련한 출동 매뉴얼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올해 12월부터 3년 간 순차적으로 순찰차량에 대당 2벌씩 방탄복을 보급하는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관련 매뉴얼 작업도 병행해 보급 절차 완료와 동시에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순찰차 1대에 2개씩 보급된 방검복이 경찰관의 마지막 생명줄이다. 하지만 방검복 역시 ‘상황에 따라 권총과 방검복 등을 사전 준비해야 한다’ 정도의 부실한 내용으로 도움이 안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 한 파출소 순찰팀장은 “신고 내용에 관계 없이 실제 착용 여부는 사실상 개인재량에 맡겨져 있어 현장 상황을 잘못 판단할 경우 위험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검복 숫자도 부족해 일부 경찰은 10만~40만원에 달하는 개인 방검복을 자비로 구입해 사건 현장에 투입하는 현실이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총기 사고의 안전지대가 아닌 사실이 증명된 만큼 범죄와 직접 맞닥뜨리는 현장 경찰관에게라도 서둘러 보호 장비를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수사 결과 피의자 성모(46)씨의 우범자 관리등급이 석 달 전 최하 단계로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전과 7범인 성씨에게 2012년 9월 출소 뒤 전자발찌 부착명령이 내려지자 그를 우범자 관리대상 최고단계인 ‘중점관리대상자’로 정해 한 달에 한 번씩 첩보를 수집해 왔다. 그러다 법무부 보호관찰소와 전자발찌 관리 업무가 겹친다는 이유로 지난 7월 관리 등급을 ‘자료보관 대상자’로 낮췄다. 말 그대로 자료만 보관해 온 셈이어서 경찰이 우범자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강북서는 이날 살인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성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성씨 거주지를 압수수색 해 수거한 폭죽과 컴퓨터, 휴대폰 등을 분석해 범행동기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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