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0월 21일
1972년 미국 대선에 출마해 리처드 닉슨에 패한 조지 맥거번(George S. Mcgovern)은 역대 미국 주요정당 대통령 후보 가운데 가장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경선에서 좌절함으로써 저 비공식 타이틀을 유지하게 됐다. 그의 72년 선거캠프에는 전 대통령 빌 클린턴과 이번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포진해 있었다. 그는 선거인단 선거에서 매사추세츠(14표) 워싱턴D.C(3표)를 제외한 전 주에서 패배, 가장 큰 격차(521대 17)로 낙선한 후보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사우스다코다 주 출신인 그는 2차 대전 공군 파일럿으로 참전해 훈장을 받았다. 종전 후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에서 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해 교수가 됐고, 곧 정치에 입문해 56년 민주당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상원을 거쳐 대선 및 후보 경선에 3차례 출마했다.
그는 자신의 무공훈장을 애국의 물증이나 영예의 표상으로서가 아니라 반전 평화주의의 연단으로 활용했다. 유럽 전장에서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그는 미국이 인도차이나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앞서 경계한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63년 9월 상원 연설에서 그는 “현재의 베트남 상황은 군사적 개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개입은 미국의 도덕적ㆍ정치적 패배일 뿐이며, 우리가 그 덫의 교훈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내도록 악몽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듬해 통킹만 사건 직후 그는 린든 존슨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파병 찬성 진영에 섰지만 이후 내내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72년 선거 당시 그는 제임스 토빈의 제안을 수용, 연 1,000 달러의 ‘기본소득’을 공약에 포함시켰는데, 그의 ‘데모그랜트(Demogrant)’는 기존 사회보험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급진적인 복지정책이었다. 케네디 정부의 ‘평화를 위한 식량(Food for Peace)’ 프로그램을 이끌며 세계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고 77년 저 유명한 ‘맥거번 리포트’로 현대 식생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영양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가 대선에서 참패한 직후 ‘워터게이트’의 진실이 밝혀지자 승용차에 “나를 욕하지 마세요, 나는 매사추세츠 출신이에요’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2012년 10월 2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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