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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당론에 반기 들 자유를 허하라

입력
2016.10.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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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 당론에 맞서 국감 출석의사를 밝혔던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국방위원장실에서 여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 당론에 맞서 국감 출석의사를 밝혔던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국방위원장실에서 여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우여곡절 끝에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끝났다. 국감 초반을 파행으로 몰고 간 전례 없는 집권여당의 국감 보이콧도 얼마 안 가면 한국 정치사에 단 한 줄의 사건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은 문제가 하나 있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당론 얘기다.

한때 ‘웰빙정당’ 얘기까지 들었던 새누리당은 이번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단독처리 정국에서 야당 못지않은 ‘투쟁 DNA’를 드러냈다. 여야가 대치하자 내부는 전시체제로 돌변했다. 회의장은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분위기를 주도해 나간 주류 친박계 의원들 차지였다. 당 대표가 단식투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자, 단일대오는 이내 지고지순의 가치가 됐다. 여소야대 파고를 헤쳐나가려면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한다는 생존의 논리였다.

한 강경파 의원은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전투병이다. 전쟁이 나서 소대장이 앞으로 가라 하는데 ‘난 못 가요. 집에 가야 돼요’ 이러면 전쟁이 되나. 무조건 돌격해야 되는 것 아닌가.” 당론을 거슬러 ‘국감 복귀’ 소신 행보를 한 동료 김영우 국방위원장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한 친박계 ‘군기반장’은 공개회의 석상에서 “당에는 당론이라는 것이 있다. 당의 결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분들은 거기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렇게 병영 분위기가 조성되자 평소 투쟁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초ㆍ재선 의원들은 조를 나눠 국회의장 집무실로, 한남동 의장 공관으로,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로 떼지어 몰려다녀야 했다.

물론 당론을 정하고 따르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집권당인 여당과 이를 견제하는 야당이 국정 방향을 조율하는 의회 시스템에서 당론은 매우 효율적인 장치다. 국회의원이 민의를 대변한다지만, 국민 개개인의 서로 다른 요구를 다 수렴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일관된 방향의 이념 지향점인 당론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의총에서 정해진 당론은 따르는 것이 관례였다.

문제는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는 ‘당론 강제’ 다. 토론과 조정, 합의라는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당론은 지도부의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을 의원에게 강제하는 통로로 전락한다. 그리고 이게 심화하면 내부의 비판적 사고는 수면 아래로 숨고, 외부와의 합리적 대화도 어려워진다.

국회 파행이 끝난 뒤 새누리당 한 초선 의원에게 속내를 물어봤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뒤 국회에 입성한 그가 투쟁 기간 국회의장 집무실에 몰려간 70여명의 의원 무리 속에 어색하게 끼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쩌겠나. 나 같은 초선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럼 ‘이건 도저히 아니다’고 판단되는 당론이면 어떻게 할 건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여기 관행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나. 싸움이 한창인데 아군에게 총질할 수는 없지 않나.”

어쩌면 이게 대한민국 국회의 현 주소인지 모른다. 개별 의원이 당의 위계질서에 짓눌려 당론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누가 와도 마찬가지다. 이미 야권에서도 386세대가 비슷한 전철을 밟다가 초기의 개혁 이미지를 소진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여야는 송민순 회고록 파문, 최순실 게이트를 놓고 또다시 싸움질을 하고 있다. 배타와 독선, 상명하복의 문화가 활개치는 상태라면 20대 국회도 더는 기대할 게 없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를 바로잡자며 개헌론이 유행이다. 거시 담론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공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소신에 따라 말할 권리, 당론에 반기를 들어도 허용되는 당내 민주주의의 확립인지 모른다. 여든 야든, 제2, 제3의 김영우가 나올 수 있도록.

김영화 정치부 차장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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