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칼럼니스트 마헤슈와리
NYT에 평양국제영화제 소개
“국제사회 제재로 출품작 줄어
세트장은 거미줄 있고 으스스”
“평양국제영화제의 스타는 ‘주체’였지만, 세트장에는 거미줄이 가득했다.”
지난달 북한 평양에서 열렸던 제15회 평양국제영화축전을 다녀온 인도 출신 영화 칼럼니스트 라야 마헤슈와리는 1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인상을 남겼다. 그는 글에서 세계 최악의 폐쇄 사회에서 열린 영화제에서 겪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소개하고 있다.
북한에서 열리는 유일한 국제영화제인 평양국제영화축전은 영화광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1987년 만들었고 1990년 두 번째로 열린 이후 격년으로 열리고 있다. 처음에는 서방세계를 제외한 사회주의 국가나 제3세계 국가, 개발도상국의 영화를 중심으로 열렸으나 2002년부터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제를 표방하고 있다. 영화제 관객은 대부분 평양 주민들이다.
올해 영화제는 북한의 핵 실험 강행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 등으로 당초 개최 자체가 불투명했지만, 결국 100여편의 영화가 출품됐던 예년과 달리 60편의 영화만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마헤슈와리는 “늘 그랬듯 독일, 프랑스, 인도 등 여러 나라의 영화가 출품됐다, 하지만 미국과 남한의 영화는 쏙 빠져 있어서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그는 영화제 출품작들에 대해 또 영화제의 공식 협력사 고려여행사의 담당자인 비키 모히딘의 입을 빌어 “북한영화처럼 주체, 공동체 의식, 도덕성을 주제로 한 영화가 주로 선택된다”고 설명했다. 고려여행사는 2002년부터 해외 감독과 제작자가 북한 문화부에 영화를 제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마헤슈와리는 개막식 분위기도 상세히 전했다. 정부 고위인사 등이 참석한 개막식은 성대하게 열렸으나 “유엔의 제재나 최근의 수재에 대해선 언급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러시아 내무부 관료 출신 유리 미추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5명의 심사위원단도 개막식에 참석했다. 심사위원장은 심사위원들이 처음 모인 자리에서 주최 측이 일방적으로 지목해 결정됐다. 영화제에 참석한 영국 감독 매트 헐스는 주최 측이 심사위원들 가운데 연장자가 심사위원장을 맡도록 했다고 전했다. 헐스 감독은 “위협적인 분위기의 공식 석상에서, 더구나 다른 심사위원들을 불과 몇 분 전에 만났는데 반대하기는 불가능했다”며 “옳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쟁 부문에는 11편의 영화가 초청됐는데 심사위원단은 영화제의 공식 주제인 ‘독립, 평화, 우정’을 잘 형상화한 영화에 상을 주도록 주문받았다. 영화제 최고상인 횃불금상은 북한영화 ‘우리집 이야기’가 받았다. 이 영화로 데뷔한 백솔미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마헤슈와리는 “폐막식에서 이 영화가 수상작으로 호명됐을 때 관객들 사이에서 놀라는 기색이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집 이야기’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미혼여성이 고아 돌보기에 헌신해 결국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으로부터 훈장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제 참가자들은 평양 외곽의 28만평 부지에 조성된 영화세트장도 관람했다. 마헤슈와리는 “일본이나 유럽의 거리 풍경을 재현한 세트장과 1950년대 남한 거리인 듯한 세트장이 있었는데 남한 거리는 허름한 사창가와 싸구려 술집 등이 쇠락과 죄악의 전형을 표현하는 듯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세트장이 모두 텅 비어 으스스했고 후반 작업 장비를 다루는 직원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으며 내부 세트는 거미줄과 먼지에 덮여 있었다. 하지만 안내원은 ‘어제도 촬영했고 내일도 촬영할 예정인데 오늘만 쉬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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