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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청춘의 삶도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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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청춘의 삶도 눈물겹다

입력
2016.10.2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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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공시생 3인방은 쓰디쓴 현실에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우정을 나눈다. tvN 제공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공시생 3인방은 쓰디쓴 현실에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우정을 나눈다. tvN 제공

“내가 아무리 공시(공무원시험) 낭인이란 소리를 들어도 양심상 안 하는 게 있다. 놀아도 절대 노량진을 벗어나지 말 것. 여자도 내가 마음에 드는 아이에겐 대시해도 절대 소개팅은 하지 말 것.”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공시생 기범(샤이니의 키)이 기분 전환을 위해 노량진 입성 3년 만에 바깥 나들이를 계획하면서 친구들에게 했던 얘기다. 동영(김동영)의 말마따나 “할 것 다하는 놈”인 기범에게도 미래는 불안한 것이어서 일탈을 하더라도 노량진 고시촌 안에서만 허용한다는 게 ‘양심’이란 이름의 마지노선이다. 영혼까지 한 평짜리 고시원에 갇혀버린 우리 시대 청춘의 삶을 대변하는 대사라 자꾸만 곱씹게 된다.

요즘 드라마 속 청춘의 일상은 짜디짜다. 미래를 위해 현실을 스스로 저당 잡혔다. 취업을 위해 당장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인간관계까지 단절해야 하는(‘혼술남녀’의 채연) 그들에겐 혼밥과 혼술은 그저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취업 스트레스에 원형탈모를 겪기도 하고(SBS ‘미녀 공심이’의 공심), 급기야 취포자(취업을 포기한 사람) 선언을 하고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경우(SBS ‘그래 그런 거야’의 세준)도 있다.

모성애에 기댄 ‘엄카(엄마 신용카드)’라도 있으면 그나마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한다(‘혼술남녀’의 기범). 밤늦도록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가난한 청춘은 현실에 발이 묶여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기도 힘겹다(JTBC ‘청춘시대’의 진명).

하물며 연애는 감히 꿈도 못 꿀 사치다. 취준생 생활이 길어지면 단단했던 연인 사이는 흔들리고(‘혼술남녀’의 동영), 무려 10년을 만난 커플도 남남이 된다(SBS ‘우리 갑순이’의 갑순과 갑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고백은 취업 이후로 미뤄둬야 한다(‘혼술남녀’의 공명).

“청춘의 낭만이 사라진 시대”(안상휘 tvN CP)는 드라마도 마음 편히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취업, 연애, 결혼, 출산, 주택, 인간관계 등등 포기할 게 너무 많아서 ‘N포세대’가 된 청춘에게 ‘인생역전’은 드라마 안에서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해피엔딩이 가능하다는 낙관적 전망을 가질 수 없는 현실 때문”(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이다. 젊은 날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용도폐기 되기 직전이다.

JTBC '청춘시대'의 윤진명은 청춘의 고단한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JTBC 제공
JTBC '청춘시대'의 윤진명은 청춘의 고단한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JTBC 제공

‘혼술남녀’를 총괄하는 안상휘 CP는 “청년실업 문제가 일상적으로 체감되는 사회현상이 됐기 때문에 드라마 안에서 좀 더 사실적으로 조명해보려 했다”며 “결론도 리얼리티에 가깝게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취준생 중에서도 공시생에 주목한 건 “노량진 혹은 공시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고 싶어하는 공시생의 심리에 청춘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안 CP는 “과거엔 고시생이라고 하면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아니면 7급 공무원 수험생 정도로 생각했지만 요즘엔 노량진 수험생들 상당수가 하위직인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 경시했던 자리에 요즘 청춘들은 목숨을 걸고 있다. 지금 이 시대만의 특별한 사회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혼술남녀’ 작가진은 공시생들을 취재해 현실을 적극 반영했다. 캐릭터와 에피소드에는 실제 사례가 녹아 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며 “내 얘기”라며 공감을 표한다. 1년차 지방직 공무원 조모씨는 “‘혼술남녀’를 보면서 공시생 시절이 떠올라 공감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 피하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과거 청춘드라마가 청춘을 인생의 황금기로 정의하고 기성세대에 반항하거나 성장통을 겪으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형태로 청춘의 존재 양식을 보여줬다면, 최근 등장한 청춘드라마들은 사회적 의미 확장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한층 진일보했다고 평가 받는다. 윤석진 교수는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를 강요하지 않고 청춘의 속살을 사실에 가깝게 담아내려 하는 데서 한층 명확한 현실 인식이 드러난다”며 “드라마가 청년 세대를 주목하고 그들을 담론화하려는 시도 자체를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의 고단한 삶이 자칫 상품화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미화하거나 순화할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아무리 리얼리티를 추구해도 현실을 따라갈 수는 없다. 윤 교수는 “드라마 안에서 ‘우리가 너희를 이만큼이나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기성세대의 태도가 언뜻언뜻 드러나 불편해지기도 한다”며 “청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려 하면서도 그에 따른 해결책은 모색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SBS '우리 갑순이'의 갑순과 갑돌은 각각 임용고시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10년차 고시생 커플이다. SBS 제공
SBS '우리 갑순이'의 갑순과 갑돌은 각각 임용고시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10년차 고시생 커플이다.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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