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0월 20일
다수 비전공자에게 양자역학의 세계란, 적어도 심리적으론, 안드로메다보다 먼 세계일지 모른다. 가장 질량이 작은 수소 원자의 핵을 농구공만 하다고 가정해 서울 도심 어디에 둘 경우 수소 전자는 잠실쯤에 있고 그 사이는 텅 비어 있다는 이야기, 인간의 몸도 사물도 우주도 형태적으로는 그렇게 비어 있다는 이야기(팟캐스트 ‘과학 같은 소리하네’ 10회 부산대 김상욱 교수편)는 허블 망원경이 보내오는 외계은하 풍경보다 생경하다.
1920년대 저 양자의 세계를 열어젖힌 대표적 학자로 불확정성의 원리의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에르빈 슈뢰딩거, 그리고 반입자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예견한 폴 디랙(Paul Dirac)이 있다.
아인슈타인 이래 가장 큰 업적을 남겼다지만 가장 덜 알려진 디랙은, 사실 읽어도 아득한 그의 이론보다는 사적인 일화들로 그나마 영 낯설진 않은 인물이다. 경상대 이강영 교수도 최근 낸 책 ‘불멸의 원자’(사이언스북스)에서 “과학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은 유일한 챕터로 ‘모든 여성을 두려워한 천재’ 디랙의 연애 이야기를 소개할 정도였다.
그는 유명해지는 게 싫어 노벨상을 거부하려다, 안 받으면 더 유명해질 거라는 러더퍼드의 충고를 듣고서야 상을 받았다고 한다. 낯가림이 심하고 워낙 말이 없어 그의 과학자 친구들이 ‘디랙 단위’란 걸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디랙’은 한 시간에 한 마디를 하는 거였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했지만 수소폭탄 제조에 반대하다가 공직에서 쫓겨난 오펜하이머는 여러모로 디랙과 대조적인 과학자였다. 그는 사교적이었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그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부유했다. 요트 항해술, 마술(馬術), 와인, 문학 등. 삶 자체가 수학이고 물리학이었다는 디랙으로서는 그런 오펜하이머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는 오펜하이머에게 어떻게 과학과 문학을 함께 하냐며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과학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달하는 게 목적이지만, 시는 모두가 아는 걸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로 표현하는 것 아니냐.”
오펜하이머의 대답이 뭐였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디랙도 답은 알고 있었던 듯하다. 중력을 설명하며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구에서 꽃 한 송이를 꺾으면 가장 먼 우주의 별이 움직인다.” 그는 1984년 10월 20일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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