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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우의’ “경찰, 백씨 앞에서 넘어진 상황은 묻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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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우의’ “경찰, 백씨 앞에서 넘어진 상황은 묻지도 않았다”

입력
2016.10.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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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우의’ A씨가 고 백남기씨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당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 달라.

“나는 도로 왼쪽 편에 있었고 백남기씨는 대열의 오른쪽에 있었다. 방어벽에 접근을 했다가 큰 일을 당한 것. 방어벽 위에 계획에 없던 살수장치가 추가가 되고,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바로 쏘는 등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좀 먼 발치이긴 하지만 시민 한 명이 쓰려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분이 농민인지 조합원인지 그 때는 몰랐다. 옆에 두 분인가가 다가가서 머리 쪽을 끌어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경찰은 계속 쓰러져 있는 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었다. 마치 무슨 게임을 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다른 물대포가 계속 쏘아졌기 때문에 다른 시민들이 그 쪽으로 가지를 못했다. 나는 대오의 왼쪽 앞쪽에 있었고, 그래서 물대포의 움직임을 좀 더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앞에서 쏘는 물대포를 피해서 접근하면 되겠다 싶었다.”

“백씨 앞쪽에서 몸으로 물줄기를 막으면 그 사이에 시민들의 이동이 좀 원활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수압이 셌다. 한 사람 정도는 능히 넘어지고 쓰러뜨리기 충분할 정도였다. 앞으로 넘어질 수 밖에 없었고, 안 넘어지려고 버텨봤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혹시 백씨 몸 위로 넘어질까 싶어 팔을 뻗었고,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면서 받은 충격을 기억하고 있다. (자세가 낮아져) 백씨 얼굴을 가까이에서 대면했다. 물대포가 쏟아지고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조금씩 이동할 수 있었다. 몇 사람이 더 왔고, 물대포로부터 좀 먼 거리로 이동했다. 왼쪽 차벽 앞쪽은 물대포가 좀 덜해서 그 쪽까지 많은 분들과 함께 백씨를 옮겼고. 의료지원 나온 분들을 찾고 119를 불렀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해서 안전하게 모셨으면 됐다고 생각해서 원래 있었던 대열로 다시 이동했다. 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는 좀 다른 것 같다.”

-지난해 경찰 조사는 언제쯤? 당시 진술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내가 처음 들은 소식은 애초에 나는 수사 대상에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빨간 우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서울경찰청에서 연락이 왔다. 연락이 전화로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소환통지서는 나중에 도착했다. 소환날짜가 임박해서 통지서가 오는 바람에 처음에는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전화상으로 담당자에게 “내가 피의자냐 참고인이냐”고 물었고, 그 쪽에서 피의자라고 대답해줬다. 혐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조사 받아보면 안다”고만 대답했다. 12월 11일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사진 등의 자료를 제시하면서 옷, 가방, 구호외치는 모습 등에 대해서만 물어보고 물대포를 맞고 백씨 앞에서 넘어지는 장면에 대해서만 묻지 않았다. 그 전후 과정은 전부 물어봤다. 추가 소환 가능하다는 얘기만 했다. 그 뒤로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그렇다면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물어본 것인가?

“조사하면서 “빨간 우의 맞으시죠?” 뭐 이렇게만 물었다. 당시 질문하는 것만 봤을 때는 굳이 서울경찰청에서 부를 이유가 없어 보였다. 집회참가 방식, 도로 위 대열 앞에서 구호외치고 하는 것, 원래 없었던 살수장비를 방어벽 위에 설치하려고 할 때 주변에 계신 분들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밧줄을 던져서 잡아당길 때 도왔던 몇 컷 정도였다. 백남기 선생과 같이 있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다. 대열 오른쪽에 있었던 사진과 대열 뒤에서 올 때부터 동그라미 표시를 해왔는데, 백씨 왼쪽에 있었던 사진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일베 등에서는 ‘가격 자세다’, ‘손으로 얼굴을 쳤다’, ‘무릎이 복부를 짓밟았다’ 이런 주장이 제기됐다. 신체 접촉이 있었나? 있었다면 어느 정도의 강도라고 보는지?

“블랙홀 같다. 백씨 얼굴을 대면하는 등 특정 장면에 대한 기억이 강렬해서 나머지 것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장면을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다. 짧은 동영상이라도 있어서 그 상황을 말로 둘러대지 않아서 고마운데, 만약 나한테 당시 자세를 다시 취해보라고 하면 재연할 수 없을 것 같다. 기억이 잘 안 나서. 확실한 것은 넘어지면서 위로 덮치는 꼴이 되니까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 팔을 벌려서 바닥을 짚었고, 너무 얼굴이 가까이 붙어서 얼굴을 또렷이 봤던 것. 그 모습이 지워지지가 않는다. 눈과 팔 이외의 나머지 부분의 느낌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릎과 팔이 어디에 있었는지 영상 없었다면 설명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무릎 위치 등이 생명이나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고 생각하나?

“물대포를 피하기 위해서 몸부림 쳤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팔을 뻗었던 것. 지금에서야 뭐 신체접촉 이런 얘기를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보다는 물대포를 막아야 하고, 막으면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이 정도면 몸이 안 닿고 어디가 충격을 안 주고 이런 것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상이 있었기 때문에 설명할 수 있지만, 내 기억으로는 막으려고 했는데 넘어졌고 그분 얼굴을 봤고 그 직후 옮겼고 그 정도다.”

“(민주노총 관계자) 백씨 진료기록 확인했는데, 복부 등 아무 외상이 없었다. A씨가 뒤통수에 물대포를 맞고 그 다음에 물줄기가 가방 뒤쪽을 쳐서 안 덮치려고 앞으로 나간 게 딱 2초였다. 무릎 부분도 살짝 닿다가 일어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백씨 얼굴 자체가 전혀 미동이 없기 때문에 충격을 전혀 안 받았다.”

-왜 언론 노출을 결심한 건가. 혹은 좀 더 빨리 나오지 않은 이유는.

“작년에 경찰이 특정해서 소환조사를 했고, 그 이후로 조치가 없었다는 것은 경찰이 관련 수사를 접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언론에서도 나와 관련된 내용은 그렇게 크게 이야기가 되지 않았는데, 백씨 사망을 전후해서 다시 그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왔다. 나는 이게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경찰이 한 거냐, 제 3자인 빨간 우의가 가격해서 한 거냐’ 이것을 가리는 문제가 왜 필요하냐는 거다. 경찰이나 검찰이 여론의 분위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 데 이용하려고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근래에 들었다. 마치 백씨가 사망할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림을 맞추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상황에서 ‘빨간 우의’가 나오는 것은 오히려 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더라. 이미 진실과 진상은 영상도 영상이지만 의사들의 진료기록 등에서 보여지고 있다. 왜 내가 일베류의 주장에 굳이 반응을 해가면서 마치 이 전쟁의 주인공인 것 마냥 행세를 해야 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조사를 안 받거나 피해 다닌 게 아니라 조사 다 받았고, 이미 자료에 따르면 진실에 거의 근접해 있다. 근데 이것을 이제 어떻게 포장을 하고 그림을 맞추는 가에 따라서, ‘외사냐 병사냐’ 가지고 논쟁을 하고, ‘부검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가고, 제 3의 인물 등을 운운하고 이러고 있다. 굉장히 엉뚱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고, 혹시 나로 인해 뭔가가 꼬인다거나, 내가 나서면 흐트러진 상황을 좀 추수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몰라서 민주노총에 연락을 했고, “내가 필요하다면 억울한 걸 풀고 진실에 가깝게 가는데 나서겠다”고 얘기를 드렸다. 다만 아직도 유족이나 주변 분들이 혹시나 나로 인해 힘들어지거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유족 쪽과 이야기 나눠본 적은?

“백씨 쾌유를 기원하는 지역 집회나 행사지역에는 참석했고, 지역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갔는데, 아직 유족은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서울에 오지 못했다. 그렇게 하는 행위가 아까도 말씀 드린 것처럼 유족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잘 판단이 안 되더라. 논란이 엉뚱한 데로 튈 수도 있으니까. 유족들의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하는 건 마치 오지랖이 넓은 행동이 아니겠나 싶었다.”

-백남기 농민과 만난 적은 있나?

“처음 뵙는 분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조문도 응당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집단에 이용되지 않는 것이 유족과 백씨에게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방문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되면 해야 한다고 본다. 차후 계획은 없다. 검경이 럭비공처럼 튀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

-지금은 무슨 일을 하나?

“작년 말까지가 공공운수노조에서 간부급으로 일했다. 작년에 임기 마쳤고, 현재는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다.”

-일베 등 ‘빨간 우의 가격설’ 주장 제기한 사이트 이용자와 이를 토대로 비슷한 주장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등에 대응할 계획은 없나.

“(민주노총 법률원 김성진 변호사) 인터넷 기사에 댓글 달리고 있는데, 일베를 포함해서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생각이다. 여당 의원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해봐야 할 듯 하다.”

“(A씨)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살려고 거리로 나오셨던 분이 자신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에 의해서 생명을 잃었다는 것. 증거자료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외에 다른 것들을 주인공 삼아서 끌어올리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했던 그 분이 뭘 얘기하려고 했지, 그 분이 왜 그렇게 됐는지가 가려질 수 있다. 명예훼손 고소 등을 지금 해버리면 혹시라도 원치 않게 다시 링 위에서 선수로 뛰게 될까 봐 우려도 된다. 그럼 또 본질이 사라지는 것이고. 그건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차차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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