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떠난 캐나다 유학에 실패하고 귀국한 정모(27)씨는 지난 8월 지인들의 귀띔으로 마약을 손쉽게 살 수 있는 ‘어둠의 경로’를 알게 됐다. 특수 웹브라우저 ‘토르’로만 접속이 가능한 온라인 암시장이었다.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거래가 이뤄져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을 염려도 없었다. 그가 발을 내디딘 암시장은 보안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은 인터넷 환경을 총칭하는 ‘다크넷(Darknet)’이었다(본보 18일자 1ㆍ2면). 이 곳에서는 마약, 음란물뿐 아니라 살상무기까지 거리낌 없이 유통되고 있었다.
정씨는 마약을 판매하는 B사이트에서 기호와 숫자 등이 조합된 암호 글을 이용해 마약 판매자와 접촉했다. 대마는 10g에 80만원, 신종마약류인 LSD는 5만원 선에서 거래됐고 결제가 완료되면 국제특송이나 국내 거주하는 배송책으로부터 물품을 전달 받았다.
정씨는 급기야 마약 재배에도 손을 댔다. 다크넷에 재배 방법이 자세히 소개된 덕분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강원 철원군의 주택집을 빌려 방안에 텐트와 온도조절기 등을 설치한 뒤 대마 40여주를 길렀다. 다 자란 대마는 흡연용 파이프로 위장해 팔아 2,000만원을 챙겼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마약을 구입해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로 정씨 등 5명을 구속하고 박모(23)씨 등 7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9일 밝혔다. 대부분 해외 유학생 출신인 피의자들은 지난해 8월부터 1년간 대마와 LSD, 몰리, 코카인 등 마약류 1억7,755만원어치를 다크넷에서 사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암호해독과 비트코인 거래 장부를 분석해 국내 최초로 다크넷을 통한 마약 매매범죄를 적발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에 거주하며 마약을 판매한 피의자 2명을 지명수배하고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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