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봤다. 지난 10월 7일 자 칼럼 ‘삶과 문화’ 난에서 이 영화에 대한 정홍수 님의 사려 깊은 글을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지금 나는 여기서 이 영화에서 다른 쪽 얘기를 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먹먹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었다. 새삼스레 세월호 가족들이 떠올라서다. 내 맘이 이럴진대, 그 가족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아린 상처를 다시 들쑤셔대는 격이 될 거 같다. 그래서 내 유치한 생각으로는 세월호 가족들은 이 영화는 안 봤으면 한다.
이 영화에서 놀란 것은 155명 탑승자를 전원 살렸다면 영웅으로 칭송하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미 교통안전조사위원회는 공청회를 열어 엔진 이상이 생겼을 당시, 최고 책임자인 파일럿이 항공기를 회항해서 비행기를 착륙시키지 않고, 허드슨 강에 비상착수(着水)한 것을 가지고 깐깐하게 그러나 과학적으로 따져 들었다.
물론 미국 영화답게 숨겨졌던 진상이 최후에 밝혀지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러나 해피엔딩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 집요하게 비상시 매뉴얼대로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하지 않은 파일럿의 잘잘못을 따져 묻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 ‘뒤끝 작렬’ 철저한 사후 검증의 치열함이 감동적이다. 설리 기장 자신도 단지 155명을 살렸다는 우쭐함보다는, 다른 선택을 가상해서 되돌아 보며 끊임없이 반추한다. 심지어 규정대로 회항했을 때를 가정해서 비행기가 마천루에 부딪히는 끔찍한 악몽을 그리면서 자기 행동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따져 묻는다. 당시 208분의 비상 상황에서 40년 경력자인 파일럿의 경험과 직감은 꼼꼼한 매뉴얼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 직감은 정홍수님의 표현대로 “흔들리고 회의하는 믿음이며 성찰하고 완보하는 영화의 리듬”에서 나왔다.
우리 사회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거의 비슷한 원인으로 인한 인재(人災)가 벌어지고 있다. 거기 보태서 통제 불가능한 자연재해인 지진의 공포까지 겪고 있다. 국민안전처가 새로 생겼다지만, 별 도움을 못 주고 있다. 실은 국민안전처 공무원들도 뭘 어찌할지 모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들은 치열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매뉴얼이 없을 테고, 무엇보다 경험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전처를 나무라기보다 이제부터라도 안전처 담당자들이 사건 사고를 하나하나 되돌아 보고, 여러 상황을 그 영화처럼 시뮬레이션하면서 꼼꼼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매뉴얼을 철저히 지키도록 담당자들을 훈련시키는 국민안전처가 됐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도 그런 거 다 갖추고 있다고 항변하는 공무원들의 소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정확한 매뉴얼과 그를 정확히 따를 수 있는 실행력이 있었다면, 어제오늘 인재가 반복해서 일어날 리가 있겠나.
이달 초 미국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매슈의 피해는 2005년 미국 남부에 몰아닥친 카트리나와 비교해 인명피해는 1% 수준이었고, 손실액은 10%수준에 불과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카트리나로 인한 재해를 겪고 난 후, 미국식 ‘뒤끝 작렬’ 검증을 거친 후 개선된 매뉴얼과 시스템을 갖춘 덕일 거다.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부에서 강제 소개령을 내린다면 순순히 피난길에 나섰을지 궁금하다. 낙관적인 우리 국민성은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재난과 위험에 대해 근거 미약한 낙관론에 기대어 대처하는 것은 재난과 위험의 피해를 키우기만 할 뿐이다.
고광애 노년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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