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정치와 문학은 늘 불화했다. 정치는 권세의 다른 말이었고, 문학은 그것을 조롱하고 전복하느라 서정이나 감상엔 차마 눈 돌릴 틈도 없었던 적이 많다. 도종환 시인의 새 시집 ‘사월 바다’(창비)가 출간됐다. 5년 만에 나온 열 한번째 시집은 그가 2012년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해 올해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한 뒤 처음 묶은 책이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사는 그에게 시는커녕 일기 쓸 시간조차 없을 것 같지만 그는 “늘 시를 쓴다”고 했다. “매일은 못 써도 늘 씁니다. 이번 시집도 250여 편 가운데 67편을 가려 뽑은 겁니다.”
‘접시꽃 당신’으로 익히 알려진 그의 서정적 시세계는 이번 시집에도 여전하다. 다만 정계의 ‘내부인’으로서 느낀 분개와 참담함이 시 곳곳에 어쩔 수 없이 묻어난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 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화인’ 일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실천문학)에 발표했던 이 시 외에, 고 김근태 의원에게 바치는 시도 눈에 띈다. “민주주의의 실핏줄을 짓이기던 가을밤을/ 남영동 그 죽음의 방을/ 구둣발을 붙잡고 짐승처럼/ 살려달라고 매달려야 했던 피맺힌 목청을/ 창문도 창틀을 부여잡고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그 외딴곳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김근태’ 일부)
마지막 문장에선 시인이 주목하고자 하는 지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외딴 곳’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그에게 시와 정치는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하면서 시 쓰냐고 많이 묻습니다. 그렇지만 시를 쓴다는 건 꽃 한 송이든 사람이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에요. 연민을 갖고 보지 않으면 꽃이 나에게 와서 시가 되지 않습니다. 정치도 같아요. 연민의 시선으로 사회를 보고, 세월호를 보고, 백남기를 봐야 그게 시가 되고 정치가 됩니다.”
그는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최초 고발자다. 그 전엔 문학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문학진흥법을 대표 발제, 통과시켜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의 토대를 만들기도 했다. 문화계를 위해 다방면으로 뛰지만 그가 받는 시선이 늘 곱지는 않다. “정치를 한다는 게 (정계)바깥에서 시민운동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더 힘듭니다. 정치인이 된다는 건 국민 절반 이상의 미움을 받는 일이에요. 시를 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고 의심과 편견의 눈으로 바라볼 때면 문학과 정치를 함께 하는 일의 고충을 실감합니다.”
한때의 서정시인, 현 야당 정치인으로서 그에게 쏟아지는 실망의 눈빛에도, 시인은 할말이 많다. “강물이었을 때의 내 목소리와 얼굴빛을 기억하는 이들은 애써 나를 외면하려 한다/ 키 큰 삼나무들과 내가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말하며 실망스러워하는 낯빛이 역력하다 (…) 내가 한때 격류였다는 걸 아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바위와 돌들로 가로막힌 시대를 지나며/ 격류 아닌 물줄기가 어디 있는가 (…)지금 내가 폭포가 되어 소리치며 가는 것은/ 벼랑을 만났기 때문이다/ 곧게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폭포’ 일부)
시인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현재는 ‘벼랑’이다. 그 끝에서 날갯짓을 멈춰선 안 된다고 시인이 우리를 부추긴다. “날갯죽지 안쪽이 뜨겁다는 것/ 갈망한다는 것/ 우리가 도요새라는 것/ 생을 다 던져 함께 도달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숙제라는 것/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도요새의 일생이라는 것이다/ 저기 또 새로운 대륙이 몰려온다” (‘도요새’ 일부)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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