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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이라고? 정치 탕평부터 먼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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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이라고? 정치 탕평부터 먼저 하라”

입력
2016.10.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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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비밀의 문-의궤살인사건’에서 영조로 분한 배우 한석규. 노회한 정치꾼으로 알려진 영조가 실은 문화융성에 기여한 문화군주라는 게 정재훈 교수의 주장이다. SBS 제공
SBS 드라마 ‘비밀의 문-의궤살인사건’에서 영조로 분한 배우 한석규. 노회한 정치꾼으로 알려진 영조가 실은 문화융성에 기여한 문화군주라는 게 정재훈 교수의 주장이다. SBS 제공

견강부회의 우려가 있다지만 그래도 역사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묘한 기시감’이다. 20일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최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문화융성’에서 발표되는 정재훈 경북대 교수의 논문 ‘영조의 리더십: 탕평책과 문화융성’이 그렇다. 대회 제목엔 ‘창조’와 ‘문화융성’이 들어있고, 발표 논문들의 소재는 세종과 정조, 드라마 ‘대장금’ ‘동이’ ‘허준’ 그리고 영화 ‘명량’ 등이다. 이쯤이면 대회의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정 교수의 논문은 일단 영조를 주목대상으로 꼽았다는 점에서 튄다. 사도세자의 비극, 개혁군주 정조가 추어 올려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영조는 ‘매정하고 노회한 정치꾼’으로만 비춰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작품 가운데 결코 빠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인 조선 백자 가운데서도 달항아리와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인데 이게 영조시대 작품이란 점을 부각한다. 또 영조 스스로가 글씨, 그림, 도자기 등 다방면에 관심이 깊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조대의 문예부흥이 정조대 못지 않았을뿐더러 정조대를 예비한 것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영조대 문예 부흥의 원동력은 다른 측면도 있다. 정 교수는 탕평책과 균역법을 꼽는다. 알려졌다시피 영조는 노론의 지지로 왕위에 올랐으나 ‘경종독살설’ 때문에 출범 초기부터 정권의 정통성에 적잖은 상처가 있었다. 때문에 탕평책은 영조가 대단한 성군이어서 실시한 게 아니라 “나라와 신민 전체를 대표해야 하는 국왕이 한 쪽 당파만의 지지를 받는 상황이 지속”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측면도 있다. 스스로 국왕이라 일컫는 자가 자기 몸을 당쟁의 한가운데에다 던질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영조의 탕평책은 오직 그만의 것이라기보다는 “반(反)탕평파와의 끊임없는 긴장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군역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균역법 역시 “1년 동안 관료, 유생, 군사, 일반 백성 등 여러 계층의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도입됐다. 세종 이후 처음 시행된, 일종의 여론조사였던 셈이다. 정 교수는 균역법 자체는 한계가 있었을지 몰라도 이렇게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 크게 주효했다고 봤다. 숙종 때 양란으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 극복됐다면, 영조 때는 그 토대 위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한마디로 영조의 포용적인 리더십이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고, 이것이 영조시대 문화융성의 근간이었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창조’와 ‘문화융성’을 내걸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전화로 연결된 정 교수는 “진정으로 문화융성을 하려면 그 때만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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