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0월 19일
10월 19일은 알바니아 의회가 국가 공휴일로 지정한 ‘테레사의 날’이다. 2003년 교황 바오로2세의 시복(諡福)에 따라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가 된 날. 지난 9월 4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성(諡聖)돼 ‘캘커타의 성녀 테레사’가 됐으니 알바니아의 공휴일도 바뀔지 모른다. 가톨릭 교회 공식 축일은 9월 5일이다.
테레사는 1910년 옛 유고슬라비아(현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계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성모수녀회에 들어 27세에 종신 서원했고, 46년 피정 기차 안에서 ‘약자를 도우며 살라’는 소명을 받아 2년 뒤부터 빈민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병든 사람을 거두어 간호ㆍ임종했고, 먹을 것을 베풀었고, 아이들을 거두어 길렀고, 전염병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도왔다. 그 과정이 성스러울 만큼 헌신적이었다. 오랜 봉사 노동으로 허리가 굽었고, 잦은 심장 발작에도 제 몸보다 병자들을 먼저 보살피려 했다. 청빈을 서원한 수녀답게 그는 자신이 돌보던 이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이어갔다.
그는 교황에 버금가는 존경과 환대를 받았다. 49년 인도 캘커타에서 조직한 그의 ‘사랑의 선교회’는 엄청난 기부금을 거두어, 이제 세계적인 봉사 선교단체가 됐다. 그와 선교회의 도움으로 나은 삶과 죽음을 맞이한 이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용서의 미덕으로 폭력을 감쌌고, 인내의 이름으로 피억압에 눈감았다. 그의 생명 존중은 강간 피해자의 낙태조차 죄악시했고, 기부에 후한 독재자와 범죄자에게 한없이 너그러웠고, 자신의 종교윤리적 권위 혹은 권력으로 그들의 세속권력에 부역했다. 막대한 기부금은 빈민 의료시설의 위생과 서비스 개선보다 선교회 지부 증설에 먼저 쓰였고, 그 결과 구할 수 있었을 생명들이 비위생적ㆍ비과학적 의료 서비스로 적잖이 희생됐다는 비판도 있다.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비를 팔다’(김정환 옮김, 모멘토)에서, 의학전문지 ‘랜싯’편집장이 전한 캘커타의 열악한 호스피스 시설과 서비스를 인용하며 “그 지경에 처한 것은 마더 테레사가 그 지경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참경을 개선하지 않고 전시함으로써 자신의 봉사 곧 ‘하느님의 사랑’을 더 돋보이게 하려 했다는 것, 그것이 “그들 노력의 핵심”이라는 거였다. 히친스는 “마더 테레사는 매우 단호하고 정치화한 교황체제의 사절”이라고 썼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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