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원자바오 총리와 비공개만찬에서 오간 발언을 그대로 공개해 외교적 ‘결례’소동을 빚었다. “김정은도 김정일처럼 죽을 때까지 집권하지 않겠느냐”는 MB의 말에 원자바오가 “역사의 이치가 그렇게 되겠습니까”라고 했다는 발언이다.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의 예민한 내용도 썼다. 북한의 과도한 경제적 요구로 정상회담이 틀어졌다며 내막을 털어놨다. 그러자 발끈한 북한이 “오히려 MB정부가 비밀접촉을 갖자며 돈봉투를 건넸다”고 주장해 공방이 벌어졌다.
▦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퇴임 19년 뒤 출간됐다. 내란죄로 수감 중인 1997년 직접 초고를 썼고, 측근들이 검증하는 데 4년 넘게 걸렸다. 그런데도 출간 시기를 저울질하다가 팔순이 되는 해에야 주변의 건의로 책을 냈다. 노태우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발표와 남북 유엔 동시가입 등 남북관계에 큰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회고록에서 남북대화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기술돼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50년, 100년 정도 뒤에 밝혀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쟁점은 2007년 정부의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기권 결정이 북한에 물어보고 한 것이냐 여부다. 관련자 주장을 보면 북한에 뭔가 ‘말’을 하기로 한 데는 일치하지만 ‘결정 전 의사 타진’인지 ‘결정 뒤 통보’인지에서 차이가 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 해외 순방 중 봤다는 북한 관련 쪽지도 존재에는 동의하나 북한의 ‘답변’이냐 ‘반응’이냐는 데서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진위를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비공식 회의라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쪽지’도 보관돼있을 리 없다. 송 전 장관도 쪽지 내용을 메모했거나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 이번 파문은 사실의 문제라기보다 해석 차이일 개연성이 높다. 북한 문제가 극도로 이념화, 정치화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담당 공직자는 신중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극한 대립 끝에 허위로 판명된 ‘노무현 NLL포기 발언’ 논란에서 보듯 진위를 가리기 어려운 남북관계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소모적이다. 한국 정치의 품격은 떨어지고 국민의 삶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게 무엇보다 안타깝다.
이충재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