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호기롭게 동물병원 간호사 체험을 자청했다. 반려인들에겐 보이지 않는 상담 데스크 뒤편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또 청소나 간단한 물품 정리 등은 도울 수 있을 것 같았고, 성격이 순한 동물이라면 달래주고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과 달리 아직 동물병원 간호사 자격제도가 없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정부에서는 수의사의 지도로 기초 진료행위를 할 수 있는 수의간호사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바쁘게 돌아가는 수술실과 진료실에서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병원이다 보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몸이 아파서 오는 동물들 천지였다. 이 가운데는 간단한 처치만 하고 돌아가는 동물환자도 있었지만 산소실에 들어가야만 버틸 수 있는 응급 동물들도 여럿이었다. 병원에 머문 것은 고작 이틀이었지만 두 마리의 개가 세상을 떠났고 세 마리가 수술을 받았으며 이미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거나 수술을 앞둔 동물들로 병원은 북새통이었다.
동물 환자 중에는 노령견들이 특히 많았다. 보통 열 살이 넘은 환자들인데 사람으로 치면 일흔을 넘긴 셈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동물들도 신체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동물들은 자신이 아픈 곳을 숨기려는 특성이 있고, 아픈 증상을 이야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얼마나 아팠을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없어서 이를 지켜보는 반려인들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수의사와 간호사들이 입원 동물들을 돌보는 중 유독 동그란 눈의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 한 마리가 검사를 받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왔다. 보호자는 반려견이 밤새 고통에 시달리고 끙끙대서 급하게 병원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열네 살 ‘달님’은 복강 내 종양이 이미 많이 번졌고 복수가 찬 상태였다. 다니던 동물병원에서는 달님의 안락사를 권했다고 하는데 보호자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호자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달님이 수액을 맞는 동안 내내 눈물을 쏟으면서도 “잘했어” “고생했어” “힘들었지” “아이고 예뻐”라고 말하며 달님과 눈을 맞추며 안심시켰다. 열세 살이 된 우리집 반려견 ‘꿀꿀’과도 ‘언젠가는 이런 작별의 시간이 오겠지’라는 생각에 괜히 눈물이 났다. 진료실에서 그냥 달님이 예뻐서 찍어둔 사진을 보호자에게 전달했고, 이를 본 보호자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호자에게 쓴 커피와 휴지를 건네주는 게 전부였다. 퇴원하는 보호자와 달님을 보면서 달님이 꼭 한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호자와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달님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중 보호자로부터 퇴원 당일 밤늦게 결국 달님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열흘 뒤 보호자로부터 장문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달님이 죽기 직전 정신이 잠깐 멀쩡하게 돌아와서 “더 많이 사랑한다, 고맙다 이야기 못 해준 것과 좋은 곳에 데려가지 못한 것, 맛있는 거와 좋은 거 많이 못 사준 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설사 넓은 곳에서 맛있는 것만 먹으면서 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렇게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는 가족이 있었던 것만으로도 달님은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노령견을 키우는 한 사람으로서 달님 보호자의 마지막 조언을 성실히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와 더 많이 이야기 나누시고, 예쁜 사진도 많이 찍으시고, 많은 시간 함께 보내세요.”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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