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이름이요? 아직 안 정해졌어요.”
거짓말이었다. 지금이야 이보다 좋은 이름이 있을까 싶지만 당시엔 “친척들에게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 할 정도로 낯간지러운 이름”이었다. 총알을 막는다는 뜻의 방탄과 소년단을 합친, 아이돌 그룹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름이 정해지자 당사자인 멤버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단다. 10~20대 대한 사회의 편견과 억압을 막아낸다는 뜻이라고, 소속사(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의 설명을 듣고서야 7명의 ‘소년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2013년 대중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 황당한 이름의 보이그룹은 지금 방 대표의 의도대로 질풍노도의 젊음을 대변하고 있다. 그것도 전 세계의 청춘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기록이 말하는 저력
17일(현지시간) 미국 팝 차트 빌보드는 ‘BTS ‘Wings’ Sets New U.S. Record for Highest-Charting, Best-Selling K-Pop Album’(방탄소년단의 ‘윙스’가 미국 내 한국 앨범 최고 판매량과 차트 최고성적 기록을 세우다)란 칼럼을 실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10일 발매한 정규 2집 ‘윙스’가 빌보드 200 차트에서 한국 가수로는 최고 기록인 26위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지난해 미니앨범 ‘화양연화 pt2’(171위)와 지난 5월 정규앨범 ‘화양연화 young forever’(107위)에 이은 세 번째 빌보드 진입이다. 국내 가수로는 유일하게 두 장의 앨범으로 빌보드에 이름을 올렸던 지드래곤의 기록마저 갈아치운 새 기록이다.
팬들 사이에서 방탄소년단은 이미 기록의 아이돌로 불린다. 타이틀 곡 ‘피 땀 눈물’의 뮤직비디오는 지난 15일 조회수 2,000만 건을 최단 시간인 5일만에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최근 빌보드와 양대 팝 차트로 평가 받는 영국 오피셜 차트에는 62위로 이름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한 적은 있지만 앨범 차트에 진입하기는 국내 가수 중 방탄소년단이 최초다.
자연스럽게 해외 언론들이 잇따라 주목하고 있다. 스위스 공영방송 SRF는 “전 세계 각종 음악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고 전했고, 미국 음악전문 케이블 퓨즈티비도 “‘윙스’가 멤버들의 개성과 삶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호평했다.
“그냥 살아도 돼, 우린 젊기에”
SM과 YG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가요기획사 소속이 아니다. 소속사의 유일한 아이돌 그룹이기도 해 팬들 사이에선 ‘중소돌’(소규모 기획사의 아이돌)이라 불린다. 방시혁이란 유명 작곡가의 손을 거쳤지만 데뷔부터 기획사의 유명세를 든든한 배경으로 삼는 아이돌과는 출발선이 달랐다.
그런데도 데뷔 3년 여 만에 정상급 위치에 올라섰다. 멤버들은 자신들을 당황시킨 그룹 이름에서 원동력을 찾는다. 그룹 내 랩 담당인 슈가(24)는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소년’들의 방황과 갈등 등 우리 또래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모습이 사랑 받는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남녀간의 가벼운 사랑고백이나 뜻을 알기 힘든 가사가 넘쳐나는 아이돌 음반시장에서 방탄소년단은 한결 같이 청춘이 당면한 고민을 대변해왔다.
‘어른들과 부모님은 틀에 박힌 꿈을 주입해 장래희망 넘버원 공무원?’(‘No more dream’)/‘그냥 살아도 돼 우린 젊기에 수저수저 거려 난 사람인데’(‘불타오르네’)/’밤새 일했지 니가 클럽에서 놀 때/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쩔어’) 같은 식이다.
2집 ‘윙스’는 뮤직비디오와 가사 등에 아예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데미안’을 차용해 청춘만이 겪는 혼란스러움을 표현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계도자가 아니라 동시대 소년들의 방황과 아픔에 대한 대변자로 전 세계 또래들이 공감대를 느끼는 것 같다”며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방탄을 잘 모른다고?
연일 기록행진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중성의 한계는 방탄소년단의 고민이다. 여느 아이돌 그룹처럼 강력한 팬덤은 그룹을 지탱하는 힘이지만 전 연령을 아우르는 대중적 인기가 부족하다. 보컬을 담당한 진(24)은 최근 2집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내 친구들만 하더라도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뭔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댓글 반응은 거의 우리 팬들 위주여서 대중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가 없다”며 이런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K팝 시장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TV 음악 및 예능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하며 인기를 쌓은 뒤 팬덤을 확장해 갔던 과거 아이돌 그룹의 활동 방식과 달리 최근엔 일정한 팬덤을 중심으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저변을 확대하며 수익을 얻는다는 얘기다.
방탄소년단 역시 국내 TV프로그램보다 자체적으로 제작한 유튜브 영상(‘방탄밤’)과 활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에 홍보 역량을 집중해 왔던 게 사실이다. 해외에서의 인기도 이런 활동에서 비롯됐다. 대중문화전문 매체 아이즈(ize)의 강명석 편집장은 “국내의 유명세나 대중화보다 공연과 음반 등을 통한 산업적 수익을 얻는 시스템으로 아이돌 업계가 움직이고 있다”며 “힙합과 케이팝의 접점을 내세운 방탄소년단 역시 SNS를 통해 전 세계 시장에 어필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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