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론' '전쟁론 강의' 내놓은 김만수 박사

13년간에 걸친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번역, 해설 작업을 마무리한 김만수 박사. "전쟁은 정치의 다른 수단"이란 명제로 유명한 전쟁론은, 거꾸로 전쟁에 대한 절제를 강조하는 책이다.

“‘전쟁론’은 전쟁하자, 화끈하게 한번 싸우자고 주장하는 책이 아닙니다.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라는 4대 강국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정치적 통일체를 이루지 못한 프로이센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다룬 책입니다. 우리가 봐야 할 지점은 바로 그 점입니다.”

손자병법과 나란히 놓이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고전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의 정치”라는 얘기로 유명하다. 군사행동은 정치가 실패하는 곳에 시작되는 게 아니라 전쟁과 정치는 한 몸이라 주장했다. 이 책은 출간하려 쓴 게 아니어서 원래는 메모더미에 가까운데다, 클라우제비츠가 병으로 급사한 뒤 남은 이들이 급히 펴냈다. 그렇기에 구성과 의도를 둘러싼 논란은 불가피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온 대전대 군사연구원 김만수 박사가 ‘전쟁론’의 번역, 해석작업에 13년을 들인 이유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독일어 제19판 표지.

그 결과물이 갈무리출판사에서 나온 1,000쪽 분량의 번역본‘전쟁론’, 전쟁론에 대해 풀어 쓴 600쪽 분량의 해설서 ‘전쟁론 강의’다. 2009년 완역본을 한차례 선보인 뒤 다시 미진했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모두 다듬고 해설까지 써붙였다. 근대민족국가의 총력전 개념이 없을 당시 클라우제비츠가 썼던 ‘절대 전쟁’, ‘제한 전쟁’ 등의 개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김 박사는 ‘전쟁론 강의’ 2편 3장에서 자신만의 주장을 풀어내놓기도 했다. 그는 “이 부분만 따로 떼내서 해외에다 논문으로 내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런 공을 들인 이유는 “‘전쟁론’ 연구에 필요한 한 매듭”을 내 손으로 짓고 싶은 연구자로서의 열망도 작용했지만, 한편으로는 군인ㆍ정치인ㆍ경영인 외에도 20대 게임 매니아들도 이 책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서다. 김 박사는 “그들도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전쟁론’이 유명해진 건 레닌의 러시아혁명, 마오쩌둥의 유격대 지구전 등을 통해서다. 세력 약한 곳의 ‘되치기’ 전략으로 활용된 셈이다. 이 때문에 한 때 서구 세계에서는 ‘클라우제비츠=음험한 계략가’라는 공식이 통용됐다. 김 박사는 “서방세계, 특히 전후 독일에 대한 악감정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영국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쟁론’에 대한 폄하, 비판, 조롱이 광범위하게 유포됐다”고 말했다. 이게 깨진 게 베트남전이다. 왜 패배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미국 정치가와 군인들도 결국 ‘전쟁론’을 펴볼 수 밖에 없었다.

미국 합참의장,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 베트남전 참전경험을 통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찬양론자가 된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는 클라우제비츠의 조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가 살았던 18세기 말, 19세기 초 프로이센은 주변 4대 강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해서다. 김 박사는 “그의 기본적 관심은 프로이센이 유럽 4강 구도 사이에 낀 나라가 아니라, 유럽 4강 구도 속 무게추 역할을 해서 유럽 전체의 세력균형을 통한 평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독일어 초판 1, 2, 3권.

처지가 다른 상대방조차도 내심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백한 정치적 목적, 그리고 그 목적에 걸맞는 수준으로만 움직이는 극도로 절제된 군사 행동, 최대한 전쟁을 회피하되 싸울 때는 단호한 작전, 강력한 적군과 만났을 때 벌이는 끊임없는 지연 작전, 괜한 보복이나 모욕 등 상대방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언행 자제 등의 개념은 이런 생각 아래서 나왔다. 김 박사는 “이후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통일이 완수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참모총장 몰트케와 슐리펜이 그 직계 제자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이들은 클라우제비츠가 제시한 원칙을 엄격히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쪽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향후 독일이 1ㆍ2차대전으로 치달아가는 과정은 유럽의 세력균형을 추구한 클라우제비츠의 목적에 배치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반도에 ‘전쟁론’이 무성하다. 북핵 사태 때문이다. 핵무장론도 나오고, 상대가 빨리 무너져야 한다는 데 조금만 이견이 있으면 색깔론 범벅이 될 각오를 해야 하며, 아예 북한을 선제적으로 타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입으로는 이미 전쟁이 여러 번 벌이고도 남음이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먼저 이런 군사행동에 따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적 대답이 안 보입니다. 그리고 프로이센과 달리 한국은 모호한 중립이 아니라 서구 진영에 일방적으로 쏠려 있습니다. 거기에다 무엇보다 프로이센과 달리 독자적 작전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론’이라고요?” 그의 대답은 설명이 아닌 반문이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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