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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어머니 때와 다른 삶… 아빠에겐 일ㆍ가정 중 선택 강요”

입력
2016.10.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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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아이와 보내다 보면

아내가 짜증 내는 일 생길 수밖에

아이와 공통의 재미 찾고

아빠도 싫은 건 싫다 말해야

회사 눈치 탓 육아 참여 힘들어

육아휴직은 신념 있어야만 가능

직장서 강한 척하는 아빠도 문제

퇴근 후엔 지친 아내 이해를

친구(Friend) 같은 아빠(Daddy) ‘프렌디’가 되고픈 남성들은 고달프고 혼란스럽다. 자신의 육아 방식이 감시인지 보호인지 헷갈리고, 여전히 가정보단 일이 우선인 자신을 발견한다. 자녀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시도는 때때로 아내의 면박, 혹은 보다 내공 깊은 가르침에 막힌다. 가부장의 권력은 거세됐고, 아이들은 커간다.

그래도 아이는 부모가 함께 키워야 한다. “나도 육아”라고 외치는 30, 40대 아빠 3명이 지난 5일 저녁 퇴근 후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회의실에 모였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이희주(47) 실장, 교육시민단체에 몸담고 있는 배정인(40) 사무국장, 현직 육군 간부인 백승수(37) 소령이다. 모두 초등학생 이하 남매를 자녀로 뒀다. 그들이 ‘육아빠’(육아하는 아빠)의 고충을 수다로 털어놓았다.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아빠들이 5일 퇴근 후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 16층 회의실에 모여 양육을 주제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이희주 실장, 육군 간부인 백승수 소령,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는 배정인 사무국장.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아빠들이 5일 퇴근 후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 16층 회의실에 모여 양육을 주제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이희주 실장, 육군 간부인 백승수 소령,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는 배정인 사무국장.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애 보기의 고단함

공교롭게 셋 모두 터울이 두 살이고 손위가 누나인 남매의 아빠였다. 초면이지만 서로 소개하고 나니 형제처럼 친해졌다. 먼저 자신이 보기에 자기는 어떤 아빠냐고 물었다.

이희주= 몹쓸 아빠죠. 평일 시간은 거의 다 회사에 바치니까요. 주말은 가급적 애들하고 보내려 합니다. 함께 영화를 보든지, 아이스크림을 먹든지.

백승수= 군인인데도 ‘패밀리 맨’(가정적인 남자) 스타일이에요. 아내가 전통적으로 해줘야 하는 역할이 있는데 일을 하다 보니 그 모든 것을 다 신경 쓰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휴가를 내서라도 하는 편입니다.

배정인= 교육회사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교육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걸 더러 느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아내가 애 수학을 가르칩니다. 어릴 때 수학을 못했던 저는 애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죠. 하지만 수학을 잘했던 아내는 이런 것도 하나 못하냐고 혼을 냅니다. 아내를 조용히 부르죠. 애를 너무 윽박지르면 수학을 싫어하게 될 거라고 말해요. 그게 이론입니다. 그런 뒤 제가 한 번 가르쳐 보겠다고 애를 부릅니다. 그런데 요즘 초등학교 문제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글로 표현된 걸 수식으로 옮긴 뒤 풀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것도 모르냐는 말을 저도 모르게 애한테 하고 있더라고요. 아내한테 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말을요.

짜증 내는 일도 그래요. 보채는 애한테 아내가 짜증 내는 경우가 있잖아요. 애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짜증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제가 말하죠. 하지만 제가 한 시간째 천장을 보며 전등을 갈고 있는데 딸이 다리를 흔드는 거예요. 그러니 짜증을 확 내게 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그때 깨달았어요. 아내도 알 거라는 것을요. 다만 종일 애와 씨름하느라 건드리면 툭 터질 정도로 늘 짜증이 묶여 있는 상태인 거죠.

이희주= 맞아요. 힘들죠. 2년 동안 휴가를 고작 이틀만 쓴 후배 사원이 있어요. 왜 그러냐 물었죠. 그랬더니 휴가 내고 애들한테 시달리느니 차라리 회사 나오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가부장은 없다

백승수= 아버지 세대와 우리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자식 키우는 건 어머니가 전담하고 아버지는 밖에서 일만 했죠. 저도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하고 결혼했는데, 제가 30년 동안 봐온 삶과 지금부터 살아갈 삶이 너무 다른 거예요. 더 이상 아내가 우리 어머니처럼 안 해주는 겁니다.

이희주=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고뇌 같은 건 여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백승수= 두 분과 달리 맞벌이인 저희 부부의 경우 똑같이 회사에서 일하고 오면 누가 집안일을 해야 하는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은 자기가 선심 쓴다는 생각을 많이 할 거예요. 왜? 그런 어머니만 봐 왔기 때문이죠.

나이 어린 자녀를 대상으로 한 양육의 상당 부분은 ‘놀이’다. 그러나 어른 특히 남성한테 그 일은 거꾸로 큰 곤욕이다.

배정인= 아이와 뭐하고 놀지는 늘 고민입니다. 아이한테 맞추면 확실히 제가 재미없어요. 내용 다 아는 동화책 대여섯 권을 읽어주고 나면 목이 다 쉬어요. 그렇다고 저한테 맞추면 애들이 재미없어 하죠. 그래서 떠올린 대안이 야구장입니다. 제가 야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팔꿈치를 높이 드는 애들이 자존감도 강하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응원하면 팔을 높이 들어야 하잖아요. 아이와 아빠가 함께할 수 있는 공통의 재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니까요.

이희주= 맞아요. 아빠도 싫은 건 싫다고 할 필요가 있어요. 아이한테 희생하는 아빠?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빠가 슈퍼맨이 아니잖아요. 아빠도 인간이라는 걸 애가 알아야 나중에 아빠 힘든 줄도 알게 되지 않겠어요?

육아빠의 스마트폰 활용법

하지만 자녀가 인격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빠도 마찬가지다. 딸은 더 그렇다. 어리게만 여겼던 딸이 어느 날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화장이라도 하고 나타나면 아빠는 험한 세상의 그 조숙이 낯설고 걱정스럽게 마련이다. 보호라는 미명의 감시 욕망이 떠오른다.

이희주= 초등학교 5학년 딸이 벌써 화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꿈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얘기합니다. 나쁜 직업은 아니죠. 꿈을 짓밟을 생각도 없고요. 다만 환상을 깨는 과정은 필요한 것 같아요. 실상을 알려주고 자기가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배정인=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아이들 꿈은 계속 변합니다. 힘든 직업이라는 걸 조금 성장하면 아는데 어른들이 조급하게 미리 재단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백승수= 청소년 첫 성(性)접촉의 절반가량이 중 1, 2 때 이뤄진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현실이 그렇다면 금지보다 차라리 임신 예방이 감시 목적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그게 아빠는 쉽지 않죠.

배정인= 좀 다른 얘기지만 스마트폰을 양육에 잘 활용하면 아주 유용합니다. 어린이날에 롯데월드에 가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에게는 아빠가 어떤 말로 설득해도 통하지 않아요. 하지만 유튜브에서 ‘5월 5일 롯데월드’를 검색해 놀이기구 앞의 장사진을 보여주면 백마디 말보다 잘 먹힙니다. 스마트폰 중독도 마찬가지죠. 중독된 아이들 영상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빠가 아무리 얘기해 봐야 통제라 여길 테니 그냥 객관적 동영상을 보게 하는 거죠.

왜 일ㆍ양육이 딜레마인가

양육을 둘러싼 문제는 일단 양육이 이뤄지고 나서야 발생한다. 집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없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예 해소돼 버리는 셈이다.

이희주=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아빠더러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무책임입니다. 그게 왜 아빠의 딜레마예요. 국가 시스템과 정치의 문제지.

백승수= 양육에 참여하려는 남편들이 가장 힘든 건 회사에서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거예요. 모호하게 일을 시키는 상사가 많기 때문에 딜레마가 생기는 겁니다. 알아서 해와. 이런 거 말이에요.

배정인= 그래도 세대가 바뀌면서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내가 임신한 10년 전만 해도 여성이 1년 간 휴직을 쓸 수 없었습니다. 실업수당 받게 해줄 테니 정리해 달라고 했다는데 화도 안 냈죠. 제가 다니는 회사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1년 정도 당연히 쉬다 오잖아요.

백승수= 하지만 아빠의 육아휴직은 다르죠.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려면 정말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배정인= 하긴, 아내가 전업 주부라면 남편이 쉬면서까지 도와줘야 하냐는 생각은 저부터도 하니까요.

백승수= 직장에서 강한 척하는 아빠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이 자주 하는 거짓말이 “아내가 알아서 잘 하더라”고요.

다퉈도 부부는 동반자

기껏 양육에 힘을 보태겠노라고 작심하고도, 아빠 노릇이 서툴다며 핀잔 주는 아내 때문에 기운이 빠지기 십상이다.

배정인= 방과후학교 수업을 3개나 듣게 하겠다고 아내가 처음 말했을 때 ‘3개까지 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일찍 파하니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연장해주려는 의도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죠. 그렇게 알아가는 것 같아요.

이희주= 예전에는 학원비를 들이지 않고도 자식을 잘 키우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놀이터에 가면 거기서 사회를 배웠죠. 싸우고 아부하고 경쟁하고. 지금은 그런 거친 교육이 없고 정제된 교육만 있는 것 같아요.

실질적인 양육은 다 엄마 몫이고, 아빠는 ‘입으로만 육아를 한다’는 빈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백승수= 기본적으로 엄마가 양육에 쏟는 시간이 아빠보다 월등히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빠는 아빠라 무관심한 척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무관심해서는 안 되겠죠.

이희주= 부부는 서로 마주보는(대립하는) 이들이라기보다 같은 방향을 보고 가는 동반자입니다. 아내가 하는 집안일ㆍ양육을 남편이 알아주고 남편이 돈 버는 걸 아내가 인정하면 될 일이에요.

배정인= 퇴근하고 귀가하면 남편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지만 종일 육아에 지친 아내 입장에선 선수교체 해 달라는 말이 나올 수 있죠.

이희주= 초등학교 저학년은 삶의 철학을 심어주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부부가 배려하고 사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제대로 된 육아겠죠. 몸소 가르쳐야 합니다. 좋은 부부 관계가 바로 좋은 교육이니까요.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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