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대출대상 요건 변경
하루 종일 은행에 문의 쇄도
내년엔 원래대로.. 혼선 가중
직장인 이모(41)씨는 2004년 결혼 후 줄곧 전세로 살다가 최근 경기 용인시의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했다. 2주 전 매매계약도 체결했다. 잔금은 이사일인 12월 초에 치르기로 했다. 매매가 4억7,000만원 중 부족한 자금은 2억원 가량은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주금공의 보금자리론 대출대상 요건 변경 소식을 접하면서 모든 게 틀어졌다. 부랴부랴 은행에 전화해보니 “잔금 치르는 날이 멀어 승인되기 힘들다”는 답변이었다. 19일 이후부터는 주택 가격이 3억원을 초과해 대출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이씨는 “무슨 정책금융이 선착순으로 운영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을 위한 대표적인 정책금융인 보금자리론의 대출요건이 갑작스럽게 변경되면서 주먹구구식 서민대출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급격한 제도 변경으로 애꿎은 실수요자를 혼란에 빠뜨려 정책 신뢰도를 갉아먹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내년에 다시 기존 요건으로 회귀한다는 방침인데, 이렇게 되면 불과 2개월여간만 정책 절벽이 발생하게 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주금공의 보금자리론 대출 요건 강화 소식에 이를 취급하는 일선 은행 창구에는 관련 문의가 쏟아졌다. 주금공은 ▦주택가격 9억원 이하 → 3억원 이하 ▦대출한도 5억원 → 1억원 이하 ▦대출은 주택 구입용도만 가능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 요건 신설 등을 골자로 한 보금자리론 대출대상 요건 변경을 19일부터 적용한다고 지난 14일 오후 늦게 공지하며 혼란을 불렀다. 주금공은 이날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18일까지 신청하거나 주택매매계약을 체결한 경우 변경 전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이날 은행에 쇄도한 문의 대부분은 이 조건에 관한 것이었다. 한 취급 은행 관계자는 “17~18일 사이 매매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면 기존 조건대로 승인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이틀 사이에 가능하냐’며 역정을 내신 분들이 많았다”며 “특히 매매계약이 이날까지 체결되더라도 예상 잔금 지급일이 30일 이내여야 대출 승인이 가능한데 이 조건을 모르는 고객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이미 매매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대부분 2개월 정도의 여유를 두고 잔금일을 정하기 때문에 대출 승인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간적 제약상 연말까지는 변경 전 조건에 따라 보금자리론을 대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란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와 주금공은 “다수의 서민은 제도 변경 이후에도 예전처럼 보금자리론 이용이 가능해 대출 중단은 아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요건이 엄격해지는 것이지 중단이라고 볼 수 없고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먹구구식 정책 운용에 대한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애초부터 정교하지 못한 한도 예상을 근거로 갑작스럽게 대출조건을 변경하는 것은 정책 일관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 초에 다시 원래 조건으로 대출이 이뤄지면 연말까지 2개월여 기간에 집을 구입하는 무주택자들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는 “불과 2개월여 차이로 일부 서민은 더 비싼 은행 대출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내년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도 운영 방식 변화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