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가사집 얻으러 미국인 호텔 쫓아가”
“밥 딜런 가사집 보고 있었어요.” ‘포크 음악의 전설’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15일 전화통화로 먼저 만난 포크 가수 양병집(65·본명 양준집)은 “다시 봐도 시어들이 참 많다”며 ‘잇츠 어 올 오버 나우, 베이비 블루’의 가사를 읽어줬다. 연인과의 결별에 대한 심경을 상징주의적 표현들로 푼 곡으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도서관 사서와 사랑을 나눌 때 흘러 나온다.
양병집이 가사를 읽은 책의 이름은 ‘라이팅스 앤드 드로잉스 바이 밥 딜런’이다. 국내엔 출판된 적이 없고, 양병집이 무역업에 종사하는 미국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책이다. 1980년대 초반 서울 한남동에서 함께 우연히 술을 마신 뒤다. “술집에서 친구와 딜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미국인이 끼어 들더라고요. 한참 딜런 얘기를 주고 받다가 딜런 가사집이 있다기에 ‘나한테 팔면 안 되냐’고 물었죠.” 양병집은 술집을 나서 미국인이 머물던 호텔로 가 딜런의 책을 받았다. 호주로 이민을 갔다 돌아온 양병집은 이사를 할 때 마다 딜런의 가사집을 보물처럼 챙겼다.
“처음엔 쓴 약 같았다”는 ‘딜런 전도사’의 고백
양병집은 ‘딜런 전도사’다. 한대수가 딜런의 자유롭고 저항적인 음악 세계를 모티프로 자신만의 음악을 내놨다면, 양병집은 딜런의 노래를 번안하거나 가사를 바꿔 그의 음악을 국내에 직접적으로 알렸다. ‘어 하드 레인스 어 고너 폴’을 번안한 ‘소낙비’와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를 개사해 만든 ‘역’(逆)등이 대표적이다. ‘소낙비’는 가수 이연실이 1973년 불러 인기를 누렸고, ‘역’은 김광석(1964~1996)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을 바꿔 불러 더 유명해졌다. 두 곡은 양병집이 1974년 낸 데뷔 앨범 ‘넋두리’에도 실렸다. 16일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뮤직라이브러리에서 마주하게 된 양병집은 “애초 ‘소낙비’는 번안해 부를 생각이 없었다”고 옛 얘기를 꺼냈다.
“(이)연실이가 찾아와 곡을 달라기에 평소 좋아했던 딜런의 ‘어 하드 레인스…’를 번안해 준 거였어요. 연실이가 ‘나 못해’ 할 줄 알았는데, 쓰겠다고 하더라고요.”
양병집은 스무 살 때 주한미국문화원에서 영어회화클럽 ‘싱킹 스톤스 소사이어티’ 멤버로 활동을 하다가 딜런의 음악에 빠졌다. 팝송을 취미 삼아 불렀는데, 친구가 “네 목소리와 잘 맞으니 딜런의 음악을 불러봐라”고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이때는 양병집도 딜런을 잘 몰랐다. 미국의 유명한 혼성 포크 트리오인 피터 폴 앤 매리가 부른 ‘블로잉 인 더 윈드’를 듣고 뒤늦게 원곡자가 딜런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였다.
양병집은 딜런의 ‘미스터 탬버린 맨’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단어는 쉬운데, 도통 이야기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딜런의 노래를 “당의 없는 쓴 약 같았다”고 표현했다. ‘몸’엔 좋은데, 표현이 철학적이라 쉽게 소화하기 어려웠단 뜻이다. 그룹 비지스의 ‘돈 포켓 투 리멤버’ 같은 편안한 사랑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딜런의 노랫말은 낯설없다. 양병집은 “영한사전을 뒤져가며 노랫말을 해석하는 데 함축성 때문에 이해가 안 되더라”며 “옛 미도파(백화점) 건물 건너 편 골목길에 몰려 있던 외국 서점을 뒤져 미국 모던 포크 음악 관련 책을 사 공부했다”고 말했다. ‘어 하드 레인스…’ 속 ‘검은 개와 걷고 있는 백인을 만났다’는 아리송한 가사도 맥락이 잡히기 시작했다.
“백인이 검은 개(흑인)를 끌고 간다는 표현으로 인종갈등문제를 표현한 거죠. 베트남전 후 뒤숭숭하던 미국 내 사회적 혼란을 폭우가 몰아치는 상황으로 묘사하고요. 딜런의 노래엔 다른 가수들이 표현해 내지 못한 문학적 은유가 넘쳐요. 그래서 노랫말에 시를 얹은 음유시인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딜런, 노래로 50년 넘게 문학적 산맥 이뤄”
양병집의 ‘역’은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와 멜로디는 같지만, 가사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헤어진 연인에게 갈라선 이유를 고민하느라 끙끙대지 말라는 원곡의 노랫말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란 엉뚱한 내용으로 바꿨다. 허허실실거리는 듯 하지만 풍자의 날이 매섭다. 양병집은 “원곡에 유머가 느껴져 이를 살리면서도 시대상을 녹여 국내 음악팬들에 공감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곡이 실린 앨범 표지로 담배를 꼬나 문 사진을 사용하는 ‘불경’을 뽐낸다. 유신정권의 서슬 퍼런 검열이 한창이던 1974년, 그의 앨범은 발매된 지 3개월이 안 돼 ‘판매금지처분’을 받았다. 이후 양병집은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3대 저항 가수’로 불렸다. 양병집은 “그냥 반항가수 정도로 하자”라며 손사래를 쳤다.
문단에선 노랫말은 멜로디를 위해 쓰여진 것이라, 온전한 문학이라 볼 수 없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가사가 문학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양병집은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그는 “딜런이 노랫말로 세상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그 어떤 작가보다 문학적 업적이 강렬하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딜런 수상에 대한 비판은)질투라고 봐요. 딜런은 한 두 곡 좋은 노래를 낸 게 아니라 50년 넘게 산맥을 이루듯 문학적 서사를 이어왔잖습니까.”
글·사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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