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가 제작한 6분 43초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빌린 시간’(Borrowed Time)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무료 공개된 이 단편 영화는 동영상 사이트 비미오에서 사흘 만에 조회수 200만 건을 기록하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미 미국 내 각종 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호평받은 작품으로, 내쉬빌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브루클린영화제 관객상, 세인트루이스국제영화제 최우수단편애니메이션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픽사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선보일 때마다 5분 안팎의 단편들을 함께 소개해 왔다. 이 단편들은 픽사를 상징하는 인장이자 또 하나의 즐길 거리로 팬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개성 있는 캐릭터, 짧은 길이에도 탄탄한 스토리로 유명하다. 픽사의 설립자이자 픽사와 월트 디즈니의 최고창작책임자(CCO)인 존 래시터는 단편이 픽사의 경쟁력을 만들어낸다는 신념으로 단편 제작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래시터는 단편을 일종의 연구개발(R&D)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빌린 시간’도 픽사의 명성을 새삼 확인케 하는 수작이다. 과거 끔찍한 사고로 동료(혹은 멘토나 아버지일 수도 있다)를 잃은 중년 보안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시절 이 보안관은 동료와 함께 마차를 타고 길을 가던 중 괴한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한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그는 낭떠러지에 매달린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장총을 이용해 그를 끌어당기려 하다 실수로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중년이 되어 사고 현장을 다시 찾은 이 보안관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하다 옛 동료가 자신에게 주었던 회중시계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떨군다. 밝은 이야기를 주로 다뤄온 픽사의 애니메이션들과는 달리 비극적이고 묵직한 이야기라 더 눈길을 끈다. 네티즌은 ‘6분만에 눈물 쏟게 만드는 영화’라며 호평하고 있다.
이 단편은 제작 기간만 5년이 소요됐다. 업무 외의 여가 시간을 쪼개서 작업해 왔기 때문이다. 픽사 소속의 애니메이터 로우 하모우-라지와 앤드류 코츠가 공동으로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8년째 픽사에 몸 담고 있는 하모우-라지는 장편 애니메이션 ‘월E’ ‘토이 스토리3’ ‘굿 다이노’ 등에 참여한 캐릭터 아티스트다. ‘아이스 에이지’를 만든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 출신으로 2010년 픽사에 합류한 코츠는 ‘인사이드 아웃’ ‘굿 다이노’ 등에서 애니메이터로 활약했다.
더 놀라운 건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음악가이자 라틴음악계의 거장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배경음악을 책임졌다. 산타올라야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6)과 ‘바벨’(2007)로 2년 연속 아카데미 최우수작곡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를 비롯해 ‘아모레스 페로스’(2001) ‘21그램’(2004), ‘나는 비와 함께 간다’(2009) ‘비우티풀’(2011) 등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가 이끄는 일렉트릭 탱고 밴드 바호폰도가 세 차례 내한 공연을 갖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단편도 명품으로 만들어내려는 픽사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연출자 하모우-라지와 코츠는 미국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은 어린이 영화로 인식돼 있다. 그런 인식이 애니메이션의 다양성을 제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웃음과 코미디로 가득한 가족 영화 대신 진지한 액션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에겐 커다란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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