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압박을 받던 은행원이 회식 다음날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강석규)는 사망한 이모씨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1990년 A은행에 입사한 이씨는 높은 실적으로 동기들보다 빠르게 승진을 거듭하며 일찍 간부 자리에 올랐다. 2012년 종합업적평가에서 전국 지점 1등을 차지했고 2013년에는 정부 부처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2013년 초 이씨가 발령 받은 서울 모 지점은 매달 실적 1등을 유지하다가 결과가 뒤집히면서, 2014년 1월 18일 평가에서 2위를 기록하게 됐다. 이 때문에 이씨를 비롯해 승진 대상자였던 다른 직원 대부분은 승진하지 못했다. 이틀 후 진행된 회식에서 만취한 이씨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하며 부하 직원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한 뒤 귀가했고, 다음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씨의 죽음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거절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씨가 평소 실적압박이 심했고 사고 무렵에는 업적평가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며 “과로나 스트레스가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킬 수 있기에 이씨의 업무와 사망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결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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