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올리브동물병원 2층 수술실, 8년된 몰티즈 종 암컷인 ‘콜라’가 수술대에 올랐다. 2.4㎏의 작은 체구인 콜라는 고관절·슬개골 탈구와 십자인대 파열로 제대로 걷지 못해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오전 11시 박정윤 수의사가 호흡마취를 시작하자 콜라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때부터 박수의사와 수술팀 간호사들은 바삐 움직이며 심장박동 수와 혈압, 체온을 수시로 확인했다.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콜라의 몸을 보호비닐로 감싸주고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간호사들의 역할이다.
수술 부위를 여니 엉덩이 관절로 부르는 고관절 일부가 찌그러져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박 수의사는 “이 정도면 통증이 상당히 심했을 것”이라며 찌그러진 부분을 수술용 칼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수술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콜라의 몸집이 워낙 작고 근육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수술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점심 시간을 넘겨서야 첫 번째 고관절 수술을 마쳤다. 수술실에 모인 사람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연거푸 울렸다.
이번에는 무릎관절에 있는 슬개골 탈구 수술이다. 그런데 노령견 ‘다롱’이 숨을 쉬지 못한다는 급한 연락이 왔다. 하지만 다른 수의사들의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다롱은 결국 심장쇼크로 숨을 거두었다. 박 수의사는 “다롱은 워낙 아픈 곳이 많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롱의 죽음으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가운데 오후 4시가 돼서야 콜라의 수술이 끝났다. 무려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간호사들이 수술실 뒷정리를 하는 동안 박 수의사는 콜라의 보호자에게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 수술 후 경과를 살폈다. 콜라의 보호자는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콜라를 보고 연신 눈물을 쏟았다.
입원 중인 동물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나머지 진료를 마치자 저녁 6시가 지났다. 그제서야 병원 사람들은 한숨을 돌렸다. 밤에는 당직자들이 입원 동물들을 살핀다. 이 곳에 입원한 동물들은 주인들이 맡긴 경우도 있지만 유기됐다 구조되어 식구가 된 동물들도 있다.
동물들의 생사가 엇갈리는 이 병원에 근무하는 인원은 수의사 5명과 간호사 8명이다. 당직근무까지 포함하면 이 동물병원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박 수의사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늘고 의료 기술의 발달로 반려동물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동물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며 “특히 나이 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늘면서 결석이나 자궁축농증, 고관절 탈구 등 기존 동물들이 많이 걸리던 질병 이외에 종양, 호르몬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비율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수의사들만의 어려움이 있다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환자로부터 직접 증세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의사와 간호사들은 동물들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보호자들과 소통해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비싼 의료비를 내는 것을 꺼려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다. 한 수의사는 “1년 전에 동물 약을 조제했는데 그때와 증상이 똑같으니 약만 지어달라고 한 시간 넘게 요구한 보호자도 있다”며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데도 막무가내로 요구하면 난감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동물병원 사람들은 아픈 동물들이 치료를 받아 건강을 회복할 때면 가장 보람을 느낀다. 10년 이상 동물 간호사로 일한 이선화씨는 “아픈 동물들이 건강을 되찾아 우리들을 알아봐줄 때 가장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이틀 후 동물병원을 다시 찾아갔더니 수술 후 회복 치료 중인 콜라가 절룩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슬개골 탈구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던 몰티즈 종 모모는 첫날 짖었던 것과 달리 안아달라고 다가왔다.
그들을 돌보는 사이 복수가 차 위급한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 간과 신장 악화로 수액을 맞으러 온 슈나우저, 노인들과 함께 병원을 찾은 한 쪽 눈이 없는 시추 등 새로운 동물환자들이 들어 왔다. 다시 수의사와 간호사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병원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본 것은 동물 환자 중에서 가장 활달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모모가 유리창 너머로 보낸 아련한 눈빛이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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