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긴한 육아 도우미지만…
자녀 관심 돌려 일할 시간 벌지만
과도한 노출 땐 자폐 등 장애 유발
2. 부모가 먼저 의존증 벗어야
아동들, 모방 잘하고 절제력 부족
대화 등 디지털 배제한 육아 필요
직장인 진모(32ㆍ여)씨 부부는 지난달 중순 스마트폰을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는 2G폰으로 바꾸고 TV와 태블릿PC 등 집안의 디지털기기도 모두 없앴다. 올해 초부터 아들(3)이 친구들과 바깥놀이를 꺼리더니 스마트폰으로 만화영화 시청에만 집착하는 ‘비디오증후군’ 증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심할 때는 어린이집에 가는 일조차 거부한 채 만화를 보여달라고 떼를 썼다. 부부는 비디오증후군이 발달장애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던 터라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진씨는 “직장에서 업무지시나 사람들과 교류하는데 스마트폰이 필수지만 더 이상 아들의 집착 증세를 방치할 수 없었다”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디지털기기를 집에 들이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TV 등을 멀리 하는 ‘디지털 단식’에 돌입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첨단 매체의 발달로 어릴 때부터 영상에 과도하게 노출된 탓에 신경계통이 자극을 받아 자폐ㆍ언어장애를 겪는 유아와 어린이(만 3~9세)가 많아지면서다. 14일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유아ㆍ아동 스마트폰 중독자수는 12만7,000명에 달했다. 이 중 3~5세의 중독 고위험군 비율은 2.5%로 성인(2.1%)보다도 높았다.
사실 요즘 부모들에게 디지털기기는 요긴한 육아 도우미다. 가사와 아이보기를 동시에 해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 자녀 관심을 돌려 다른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해주기에 이만한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4세 딸을 둔 김모(34)씨는 “매일 아침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태블릿PC로 만화영화를 보여주며 밥을 먹이고 내가 씻을 때는 아내가 만화를 보는 아이에게 옷을 입힌다”며 “시간이 촉박한 아침에 딸이 보채지 않게 하려면 디지털기기를 손에 쥐어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영어 조기교육 광풍이 불면서 영상을 활용한 홈스쿨링이 증가한 것도 디지털기기 의존도를 높이는 데 한 몫하고 있다. 박성연 서울언어치료센터장은 “비디오증후군이 아직 공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도 부작용이 속속 보고되다 보니 학계에서도 하나의 질환으로 인정하는 추세”라며 “3년여 전부터 영어 조기교육으로 인한 영상물 집착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전체 상담자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자신부터 디지털 집착증을 떨쳐 내려 노력한다. 최근 둘째 딸(4)과 함께 서울의 한 언어치료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정모(36ㆍ여)씨는 “큰 애와 달리 동생의 언어 습득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 같았고 친구와 노는 일에도 도통 관심이 없어 상담을 받아 본 결과 비디오증후군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스마트폰을 없애고 딸과 보다 많은 대화를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부모는 단순히 가정에서 디지털기기 사용을 금하는 것을 넘어 문화센터와 키즈카페 등 자녀가 또래와 상호작용을 많이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한다. 서울의 한 사립유치원 원장 한모(49ㆍ여)씨는 “입학 문의 시 영상으로 음악이나 영어 교육을 하는지 여부를 묻는 학부모들이 급격히 늘었다”고 귀띔했다.
영상 기기를 배제한 적절한 육아 방식을 터득하고 아동의 통제력을 길러주려면 디지털단식이 꼭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동선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위원은 “미국 소아학회에서는 이미 1970년대 후반 ‘24개월 미만 유아는 과도한 영상 노출을 피해야 한다’고 권고 했다”며 “비디오 시청을 하루 2시간 이내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지현 명지대 아동학과 교수도 “모방 성향이 강하고 절제력도 부족한 아동들의 특성을 감안해 부모가 먼저 디지털 의존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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