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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퇴근, 집중력ㆍ만족도 모두 높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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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퇴근, 집중력ㆍ만족도 모두 높였죠"

입력
2016.10.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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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출판단지 내 보리출판사 사무실. 오전 9시 출근, 오후 4시 퇴근하는 이 회사는 2012년부터 6시간 노동제를 택하고 있다. 변해림 인턴기자
경기 파주출판단지 내 보리출판사 사무실. 오전 9시 출근, 오후 4시 퇴근하는 이 회사는 2012년부터 6시간 노동제를 택하고 있다. 변해림 인턴기자

오후 4시다. 이쯤이면 직원들이 가방을 싸서 서둘러 회사를 빠져 나가는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예상과 달리 일어서는 직원은 없다. 사무실에 있던 3, 4명 직원들은 여전히 뭔가 할 일이 많은 듯 바삐 움직인다. “6시간 노동제를 한다고 해서 야근을 아예 안 한다는 건 아니에요.” 당황한 표정을 눈치챈 듯, 한 직원이 슬쩍 일러준다.

2012년 3월부터 4년 반 이상 ‘6시간 노동제’를 유지해오고 있는 경기 파주출판도시의 보리출판사를 13일 찾았다. 이웃 일본의 주 4일제 근무 때문에 다시 주목 받는 게 이 출판사의 ‘6시간 근무제’ 모델이다. 주 4일제의 경우 1일 8시간 근무 기준으로 보면 주 32시간을 근무한다. 1일 6시간은 주 5일 근무에 따르면 30시간 근무다. 우리에게 이미 선진적 모델이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하루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정한 이유도 네덜란드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다. 네덜란드는 연 노동시간 평균이 1,380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다. 6시간 근무제로 하면 연 1,386시간이니 얼추 비슷하다. 하지만 2,110시간대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평균에 비하자면, 이게 대체 가능하기나 한 숫자인가 싶기도 하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다. 이날 오후 4시 퇴근자가 없었던 건 월간지 ‘개똥이네 놀이터’ 마감일이 18일이어서다. 출판사에서 마감은 피를 말리고, 야근을 부른다. 보리도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수당 지급 대신 초과 시간을 모아 휴가로 쓸 수 있는 ‘시간적립제’를 도입했다. 수당을 주게 되면 이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결국 6시간 근무제가 무너질 것을 우려해서다. 대신 초과 근무에도 한계가 있다. 부서장 승인 아래 한 달에 18시간을 넘어갈 수 없다. 그 이상일 경우 담당 부서장이 이사회에서 승인 받아야 한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몇몇 대기업들이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시켜준다는 ‘조기출퇴근제’를 도입했지만, 실제로는 출근시간만 빨라졌을 뿐이다. 그래서 윤구병 대표가 “24시간 고민하는 게 편집자인데 4시 퇴근했다고 생각을 멈추는 게 아니다” “사람의 집중력은 3시간을 넘지 못한다, 오래 하는 게 아니라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오히려 직원들이 가능할까 의심했다. 더구나 출판사 일은 생산공정에 맞춰 결과물을 뽑아내는 제조업이 아니다. “처음에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부서장 중 한 명이 시간적립제를 100% 활용하겠다며 ‘나는 노동자’라 선언하는 일이 있었어요. 그 경험이 중요했습니다.” 기획실 김성재씨의 말이다.

똑같은 일을 6시간 안에 끝내기 위해서는 더 촘촘한 업무 계획, 더 세부적인 업무 동선을 짜야 했고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 했다. “6시간 이상 일하는 건 성실해서가 아니라 일을 못해서”라는, 누군가에게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지금 각 부서 연평균 노동시간은 1,400시간 정도다. 일이 가장 많다는 디자인부서는 1,516시간이다.

직원들 만족도는 높다. 육아에 유리한 건 물론이다. 싱글맘인 편집자 A씨는 “13살 딸을 키우는 데 이런 직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공서나 은행 일을 보려 짬 내는데 눈치 볼 이유가 전혀 없다. 휴식과 자기계발에도 열심이다. 다른 출판사에서 옮겨온 조서연씨는 “예전 직장은 밥 먹듯 야근하고 집에선 쓰러져 자기 바빴다”면서 “지금은 컴퓨터도 배우고 남은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직은? “전혀 생각 없다”고 말했다.

보리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고쳐야 할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한가지는 분명하다. “자전거를 배웠어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죠. 그런데 지금 내가 뭔가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습니다.” 김씨의 말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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