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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큼 살았지..." 간전댁 할머니 말씀 가슴으로 다가와

입력
2016.10.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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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켜니 국감서 죽은 농민 얘기

나도 가까이 있었지만 물대포 무서워 줄 잡지 않아

감나무 피해조사 농협직원 동행

“나무 쓰러지면 나도 죽을까 했지”

할머니 나무는 상처투성이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농민이 감나무밭에서 보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과 함께 피해 현황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육안으로 보기에 큰 피해를 입었어도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아찔했다. 구례를 통틀어 몇 개 안 되는 신호등, 그것도 비보호 좌회전이 많다 보니 반응이 약해진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돌리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부딪힐 뻔 했다. 찰나였다. 상황보다 상대방의 경적소리에 더 놀랐고, 나만큼 놀랐을 상대방을 생각하니 미안했다. 잠시 차를 세웠다. 왜 그랬을까. 뭔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딴 생각이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정신이 없다. 부들거리는 다리로 다시 차를 몰았다.

죽을 뻔 했다는 생각으로 잠시 쉬었다 가니 주변 풍경이 사뭇 다르다. 하늘은 푸르기보다 검었고 노고단 능선은 붉은 기운을 내리기 시작했다. 억새는 하얗게 역광을 내뿜고, 길가 바늘꽃 무더기는 쓰러져 있어도 예뻤다. 맞다. 예전에는 요맘때 참 많이도 싸돌아 다녔다. 차창 열고 다닐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기였고 산을 오르기에도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날씨다.

처지가 바뀌니 맘도 바뀌는 건가. 단풍보다 나락 색깔이 더 궁금하고 촉촉한 가을비에 고구마 캘 날이 멀어져 화가 난다. 빨리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와야 좀 편히 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딘 손과 달리 맘만 급해진다. 어쩌면 정신 없는 좌회전도 그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는데도 그저 바빠야 한다는 착각에 정신줄도 회전을 했나 보다.

집 마당에 들어서는데 휴대폰이 딩동거렸다. 그 새를 못 기다리고 아내가 빨리 오라고 보낸 문자인가 보니 아니었다. “***가 하늘로 떠났습니다. **장례식장……” 다시 머리가 휭 돈다. 왕래는 적었어도 친하게 지냈고 아이들을 함께 키우면서 서로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폐암 선고를 받고 치료하며 한 때 좋아진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열심히 살다 갔으니 잘 보내기 위해 아내와 나섰다.

언젠가 아내와 비슷한 길을 가던 중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부자로 살다 죽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잘 살았으니 다행스러울까 아니면 남겨 놓은 게 많아 억울할까” 물었더니 아내가 말했다. “가난하고 조촐하게 살던 사람이라고 가는 게 후련할까?” 모를 일이다. 죽음을 전제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조문객들도 향을 피우는 시간을 포함해 망자에 대한 얘기는 채 30분을 넘기지 않았고, 나머지는 각자 살아갈 걱정을 하다가 취해서 떠났다. 어쩌면 남은 자들이 삶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도록 하는 게 떠난 사람의 마지막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안 된 지금 그의 죽음은 이미 지난 일이 되고 만다.

그렇게 새벽 길을 내려와 하루 종일 죽은 듯 잠들었다. 그리고 겨우 전화벨 소리에 깼다. “감 피해 조사 해야는디요……” 농협 직원이었다. 지난 여름에 아르바이트로 자연재해 보험에 가입한 감나무 밭을 사전 조사했는데 이번 태풍으로 피해 접수를 한 곳이 있으니 현장 조사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결자해지라는 얘기다. 내 코가 석자 남짓인데 남이 흘린 코부터 재러 가야 한다니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직접 가서 보니 여기 저기 뽑히고 꺾이고 떨어져 나뒹구는 감들만큼이나 농민들 마음도 만신창이였다. 자세히 조사하려니 진행은 더뎠고 조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만큼 더 지쳤다. 세 번째 순서로 간 곳에 할머니 한 분이 쪼그려 앉아 계셨다. 우리를 보고서 밝은 표정으로 일어서시는데 역도 선수 무릎 펴는 것 보다 힘들어 보였다. 구세주를 맞는 것 마냥 반가워하셨다. 2시간을 기다리셨단다.

억새꽃이 가을의 한 가운데를 표시해 주는 가운데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곳곳의 논에 벼가 쓰러져 있다.

“바람이 불어 대는디 흐~미, 하느님이 나헌테 왜 이라실까나, 영감은 몇 해 전에 죽고 자슥도 객지에 있고 나 혼자 조용히 사는디 멀 잘못했다고 이랄까 싶었당게요.” 할머니는 혹시라도 조사에 반영될까 싶은지 가족 상황과 태풍 불었을 때의 모습을 상세하게 말씀하셨다. “가슴은 막 둥당거려 쌌고, 나무는 흔들리고 가지 큰 것이 뿌라지는 거 봉께 나라도 나무 붙잡고 뻐팅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라다 나무 쓰라져뿔믄 나두 콱 죽어뿌까 싶었지라.”

할머니에게는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나무였고, 누가 봐도 상처투성이였지만 보상은 여의치 않아 보였다. 보험 계약에 자기부담 20%의 조건이 있었고, 피해 상황은 딱 그 정도였다. 나무의 2할이 못 쓰게 됐는데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혹시나 그렇게 말씀 드리면 서운해 하실까 봐 농협 직원도 설명을 뒤로 미루고 자리를 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미약했다. 다음에 태풍이 와도 절대 밭에 나오시면 절대 안 된다는 신신당부가 전부였다. 그러다가 진짜 돌아가신다는 협박을 더했다.

하루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조사 작업은 절반 남짓 진행되고서 어두워졌다. 저녁 대신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다는 D동생을 읍에서 만났다. 표정이 밝았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하고 생각해 보니 이 친구는 그냥 맨날 밝았다. 우중충한 하루를 보내고 나서 그런지 이유 없이 밝은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농민이 감나무밭에서 보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과 함께 피해 현황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머 허셨대요 오늘?” 일일이 보고 할 수 없어 짧게 답했다. “뿌러지고 뽑힌 것만 보구 다녔어.” D동생의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튀었다. “아따 형님, 나도 군대에서 마이 맞고 뿌라지고 했네요.” ‘뭐래?’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동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청 두들겨 맞았지라. 그라다가 문제가 생겨 갖고 부대에서 구타근절 결의대회를 열었는디, 거그서 목소리 짝다고 또 열라 맞았구마요.”

얘기를 끊고 감나무와 할머니 얘기를 했다. “그라게요. 그라다가 태풍 때 밖에 나가시믄 큰 일 당하시겄구마.” 하더니 또 딴 소리를 했다. “죽고 사는 거이 어디 맘대로 되간디요. 평균 수명이 제일 긴 사람들이 누군지 아요? 정치인이래요. 글고 질루 짧은 사람덜은 누군지 안대요? 작가들이래요. 왜 그런지 아요? 정치인덜은 뭐든 남 탓하고, 작가덜은 다 지 탓하다 죽는대요. 글고 보면 나는 일찍 죽겄지라?” 전작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각 일병하고 헤어졌다.

보통의 술자리 술상 모습. 간단한 안주에 길어지는 술자리는 다음날 계획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집에 와서 누웠다.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피곤했다. TV에서는 국정감사 관련 내용이 한참 나왔다. D동생의 말마따나 정치인들의 얼굴은 훤했다. 내 나이 또래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팽팽하고 반질반질했다. 발언 내용도 거의 남 탓이었다. 정년도 없고 연임제한도 없으니 주구장창 해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고, 뭔 짓을 해도 잘 잊어주는 유권자들이 있으니 할 만한 직업군이다. 행동하는 수준은 상식 이하인데 먹고 사는 건 상식 이상으로 보장해주는 특이 직업이기도 하다.

한 농민의 죽음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논리와 예의는 없고 억지와 모욕만 오고 갔다. 같은 주제를 놓고 초등학생들이 토론을 해도 수준이 높을 성 싶다. 잘못하지 않아도 나로 인한 것이었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이고, 잘못을 했더라도 용서를 빌면 말이라도 너그러이 해 주는 것이 예의라고 배웠다. 너무 큰 것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다 떠나서, 나는 작년 가을 돌아가신 그 노인과 비슷한 시각 비슷한 장소에 있었다. 그가 물대포를 맞은 이유가 ‘줄’을 잡아 당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줄은 내 지척에도 있었다. 내가 그곳에 있었던 이유는 밥쌀 수입을 반대하고 GMO쌀 개발을 중지했으면 하는 것이었고, 그 분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물대포가 무서워 줄을 잡지 않았고, 그는 무서웠더라도 잡고 나선 것이다. 작은 차이로 나는 이곳에 있고 그는 다른 곳에 있다. 사실 작지만은 않은 용기의 차이 때문에.

며칠 전 간전댁할머니가 오셔서 장을 걸러주셨다. 된장을 치대고 간장을 곱게 걸러 항아리에 담아 행주질 치는데 까지 5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직 할머니가 아니면 아무것도 자신 있게 해 낼 수 없는 형편이 창피하지만 어쨌든 할머니가 계셔서 해낼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일을 마치고 할머니를 모시고 읍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조화가 가득한 장례식장 앞을 지나는데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부러와요.” 룸미러로 할머니를 보며 “예?” 하니 “나 좀 델꼬 가시지……” 하셨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하니 “살만큼 보다 더 살았어요. 인자 아플일 밖에 안 남았는디 멀 하게 더 산대요.”

간전댁할머니와 아내가 메주를 건져 삶은 콩과 메주가루를 더해 된장을 만들고 있다. 귀농 6년차이지만 할머니의 도움 없이 되는 것은 많지 않다.

덜컥 겁이 났다. 누구나 “이제 죽어야지”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헌데 할머니의 말씀에서 왠지 진심이 느껴져서 순간 마음이 내려앉았다. ‘정말일까? 할머니 마음이 진심일까?’ 명치가 답답해졌다. 일생을 허리 굽혀 땅만 보며 살아오셨고, 아직도 물 새는 지붕 이고 사시면서 “이만큼 살았으면 됐다”고 말씀하시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잘 죽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부모님 살아계시고 이제 나이 반백에 할 말이냐 싶지만, 잘 펼쳐 왔으니 잘 접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로 인해 괴로운 사람 만들지 않고, 흔적 없이 지나간 줄 모르게 세상에 왔다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욕심이 없는 척 하며 살아가지만 그만한 욕심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여태까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내 맘 같을 수 있을까.

청년회가 마련한 경로잔치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음악을 들으며 다과를 즐기고 있다. 노인들은 바쁜 와중에도 예정시간보다 1시간은 일찍와서 행사를 기다린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신다.

아내가 날도 흐리니 짬뽕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날씨 때문에 랍스타 생각 안 하는 게 어디냐 싶어 “콜!”을 외쳤다. 아내는 입이 참 싸다. 말을 잘 옮긴다는 뜻이 아니니 ‘혀가 싸다’고 해야 맞겠다. 간혹 먹고 싶다는 게 떡볶이, 가고 싶다는 식당이 중국집이다. 삼선짬뽕도 있고 쟁반짜장도 있는데 시키는 음식은 모두 두 글자 이하다.

짜장, 짬뽕과 반찬이 들어왔다. 내가 짜장면을 비비면서 “깍두기는 중국산이 거의 없대” 말했다. 면 가닥을 입에 문 아내가 깍두기를 손으로 가리키더니 그 손을 쫙 펼치며 팔을 뻗었다. 자기도 그 얘기 하려고 했는지 싶어 ‘오 마음이 통하네’ 하는 마음에 짜장면을 입에 넣으며 하이파이브를 해줬다. 혀가 움직일 만큼 씹은 아내가 말했다. “아니, 그 얘기 다섯 번째라고” 참 안 맞혀준다.

잘 맞고 안 맞고가 어디 있겠나. 한 신부님이 TV에서 말했다. “잘해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그 시간에 함께 있었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 그래, 인정한다. 난 잘 살 자신은 없다. 죽을 자신도 없고, 죽지 않을 자신도 없다. 쓰러지는 나무 끌어 안고 같이 쓰러질 용기도 없고, 줄 잡을 용기도 없다. 그저 내 사람들과 함께 살아 남을 거다. 비보호 세상, 그것도 쉽지 않겠지만 일단은 그리 할란다.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농막에서 간식으로 먹기 위해 수확한 밤들 중에서 벌레 먹고 물에 뜨는 것을 삶아 봤다. 벌레가 빠져 나간 흔적은 분명하지만 밤 맛에는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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