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처럼 굴지만 왕답지 못한 리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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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처럼 굴지만 왕답지 못한 리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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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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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대학, 중용, 맹자…. 늘 거론되는 동양고전입니다. 개인적으로 동양고전에 대한 찬미에 반감이 있습니다. 동양고전이란 ‘결국 왕의 가마를 누가 멜 것이냐는 얘기’라던 어느 서양 철학자의 일갈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논어를 분석한 책 ‘집 잃은 개’를 내놓은 베이징대 교수 리링은, 분투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공자는 존중하지만 현대사회와 공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해서 21세기 민주공화국에 사는 우리가 정말 열심히 읽어야 할 책은 논어, 중용, 대학 같은 책이라기보다 차라리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썼다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지금 복벽운동을 벌여 조선시대로 돌아갈 게 아니라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따윈 저 멀리 내다버리고 권력분립과 균형을 고민하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중국 푸단대 장펑 교수가 자치통감의 엑기스를 뽑아낸 ‘자치통감을 읽다’는 뼈아픈 책입니다. 중국인 저자다 보니 마오쩌둥이 자치통감을 17번이나 탐독했다(저자가 보기에는 17.5번 읽었다)는 등의 얘기를 해놨지만, 조선 유학자들도 제왕학 교과서로 애지중지했습니다. 더구나 자치통감의 저자 사마광은 개혁파 왕안석과 대립했습니다. 틈만 나면 개혁파 왕안석을 소인배라 조리돌림한 이들이 조선 유학자들이었으니,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사마광은 ‘보수의 거두’쯤 될까요.

이 보수의 거두가 내놓은 얘기에서 저자는 이런 대목들을 길어 올립니다. 후한의 광무제에 대한 사마광의 평은 이렇습니다. 보통의 역사가라면 왕망을 패퇴시키고 한나라를 재건하는 영웅적 모습을 부각하는데, 사마광은 광무제가 어질지만 직급은 낮았던 신하 탁무를 발탁한 사실을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포용적인 리더십에 대한 안목을 격찬하는 겁니다. 이외에도 “권력을 장악하고 법치를 제어하는 관리들이 앞장서서 공적인 법률을 준수”하라든지 “관민관계를 아군과 적군 관계로 파악해서는 안된다”라던지 “심각한 정치 부패의 원인이 권력의 사유화에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든지 하는 문장들이 넘쳐납니다.

흔히 우리 정치를 얘기할 때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합니다. 그래 놓고 읽는 책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가 아니라 논어, 중용, 대학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제왕답지도 못하면서 제왕적이기만 한 대통령제’였다는 점을. 보수?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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