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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서 앞차 피하려다 중심 잃어... 차선 분리대 들이받고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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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서 앞차 피하려다 중심 잃어... 차선 분리대 들이받고 불꽃

입력
2016.10.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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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 안전핀 안 뽑혀 진화 못 해

뒷좌석 유리 깨고 승객 10명 탈출

13일 밤 경부고속도로에서 불이 나 완전히 타버린 관광버스. 이 불로 10명이 숨졌다.
13일 밤 경부고속도로에서 불이 나 완전히 타버린 관광버스. 이 불로 10명이 숨졌다.

울산 울주군 경부고속도로에서 10명의 사망자를 낸 관광버스는 13일 오후 7시55분 대구공항을 출발, 울산으로 향했다.

버스에는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퇴직자들로 구성된 모임 회원 부부를 중심으로, 이들의 지인 등 여행객 18명과 여행가이드, 버스기사 등 20명이 타고 있었다. 4박5일 일정으로 중국 장자제(張家界)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승객들은 중국 공항에서 항공기가 연착해 울산으로 향하는 관광버스도 예정시간보다 2시간 늦게 출발했지만 즐거웠던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영천 평사휴게소의 식당이 문을 닫아 경주 건천휴게소에 들러 먹은 우동이 이들의 마지막 만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버스는 이날 오후 10시 10분께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 부근에서 앞선 차량을 추월하는 과정에서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사고현장은 언양 진입로 램프 구간으로, 사고 버스는 내리막길로 형성된 경부고속도로에서 오른쪽 급경사인 진입로로 진입하려던 중이었다.

1차로를 달리던 버스는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앞차와 추돌을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으며 2차로를 달리던 차량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러나 버스는 앞면이 오른쪽으로 치우치면서 중심을 잃고 콘크리트 방호벽을 들이받았다. 순간 2∼3m 높이의 불꽃이 튀었다. 버스는 잠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60m가량 더 달렸으나 다시 방호벽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차량 앞쪽에 화재가 발생했고, 순식간에 버스전체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였다.

사고 당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는 여행가이드 이모(43)씨는 “갑자기 ‘쿵’하는 충격음과 함께 버스가 방호벽을 긁으면서 계속 앞으로 나가 ‘안전벨트를 풀어라’고 외치며 승객들과 대피를 시도했다“면서 “하지만 버스가 가드레일에 붙은 채 멈춰서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고 불길은 더 거세졌다”고 말했다.

불이 난지 10초 정도나 지나서 버스에 전등마저 꺼져 암흑천지로 변했다. 이씨는 “화재 연기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젠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생존한 한 승객(60)은 “비상망치가 없어 버스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승객들이 온 힘을 다해 유리창을 손과 발로 부수려 했으나 깨지지 않았다”고 안타까운 상황을 떠올렸다.

버스기사는 소화기를 찾아 작동을 시도했으나 안전핀이 뽑히지 않자 소화기를 던져 운전석 바로 뒷좌석 유리를 깼다. 버스기사와 가이드 등 먼저 빠져 나온 승객들은 차량에 갇혀있는 다른 승객들에게 “나오라”고 외치며 탈출을 도왔다.

한 승객은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해 조기에 진화가 이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그나마 소화기로 유리창을 깨지 않았더라면 더 큰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 전했다. 깨진 유리를 통해 10명이 생지옥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기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량에 붙은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일행은 가족과 옛 동료를 구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했다.

울산=김창배기자 kimcb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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