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톱만 있었다면 당장 그(밥 딜런)의 기타를 잘라버리고 싶었다.”
2014년 95세로 사망한 포크음악의 거장 피트 시거는 밥 딜런에게 이런 혹평을 한 적이 있다. 1965년 5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에서 열린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 선 딜런을 보고 난 뒤였다.
이날 딜런은 포크음악을 상징하는 통기타와 청바지 대신 면바지 차림에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포크의 대변자가 전자기타라니….’
일렉트릭 기타를 포크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상업주의의 표상으로 여기던 포크 순수주의자들에게 딜런의 모습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딜런의 동료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고 관중은 그가 선 무대 위로 쓰레기를 투척하며 분노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을 부른 딜런. 이날 그의 ‘배신’은 포크 록(Folk Rock)이란 장르의 시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라이크 어 롤링 스톤’ 역시 현재까지 딜런의 최고 명곡 중 하나로 꼽힌다.
포크음악의 생존하는 전설답게 딜런과 그의 노래를 둘러싼 많은 논란과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의 고등학생 롤리 와이어트가 딜런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앨범 ‘더 프리 휠링 밥 딜런’(The Free Wheelin' Bob Dylanㆍ1963)에 수록된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의 원작자는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일도 있었다.
미국 시사잡지 뉴스위크는 1963년 11월 4일자에 “딜런이 앨범을 내기 전에 와이어트가 그 노래를 먼저 불렀다”고 주장한 와이어트의 친구들 인터뷰까지 소개하며 관련 소식을 전했다. 딜런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표절을 의심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얼마 뒤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했다”는 와이어트의 자백이 나오면서 원작자 논란은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끝났다.
딜런은 데뷔 전 뉴욕 맨해튼의 한 카페에서 무명가수 보조로 기타를 연주하며 손님 없는 낮 시간 때만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딜런은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2004)에서 “카페 부엌을 서성거리면 주방장이 햄버거를 준비해 줬다”며 당시 애환을 고백하기도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뮤지션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다른 무명 가수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난 내 노래를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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