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일하는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정책

입력
2016.10.14 14:00
0 0

무심코 명의들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암 환자를 치료하는 한 훌륭한 의사와 여러 환자의 일상과 치료장면들이 소개됐다. 그 중에 인상적인 출연자가 있었다. 평생 골방에서 시계수리를 해 오다 60대 후반 자신의 내장기관이 암세포에 대거 침윤 당했음을 발견한 노인이었다.

명의의 도움으로 장기들을 대거 절제하는 수술을 한 후 구사일생으로 생을 이어가게 된 그는 이후 식이요법과 운동을 동반한 힘겨운 노력 끝에 재활에 성공했다. 이제 안심해도 좋겠다는 판정을 받은 후 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한 두평 남짓 되는 좁은 작업실이었다. 그는 웃으며 고백을 했다.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일하는 게 노는 거보다 재미있다.”

일, 즉 노동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다. 성경에서도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하지 않았나.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한다. 인간이 동물과 달라진 건, 일, 그중에서도 특히 도구를 사용한 노동을 수행했기 때문이라는 철학적 견해도 있다. 그만큼 일은 인간의 실존을 이루는 본질적 활동이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어느 직장에서 25년 일한 나에게 느닷없이 어느 날 “넌 더 이상 성과가 안 나니까 이제 이 일을 그만두어라”고 명한다면 어떨까. 그건 어쩌면 ‘넌 이제 너이기를 이제 포기하라’는, 일종의 정체성에 대한 폭력이 아닐까.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정규직 일자리가 금쪽같이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 과연 정상인지,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인지 잘 모르겠다. 누가 어떤 문제 위주로 답을 찾을지에 따라 답은 달라질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답을 찾을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일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다.

일이란 분명 경제적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에게 그것만이 일의 의미 전부는 아니다. 일의 또 다른 본질은 그것이 일하는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보람에 있다. 일하는 사람은 다른 인간과 세상을 빛나고 윤기 나고 편리하며 아름답게 하는 데에 기여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이 만들어 내는 그러한 가치들로부터 보람을 찾는다. 바로 노동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일, 대가, 보람을 조금 어려운 표현을 써서 다시 논하자면, 그것들은 각각 노동, 교환가치, 사용가치라고 칭할 수 있다. 교환가치는 노동을 통해서 받는 물질적인 보상, 대가를 말하고, 사용가치는 노동의 결과물이 지니는 사회적 효용성을 말한다. 일의 목적이 대가에만 있지 않다는 말을 바꿔 하면, 노동의 가치는 교환가치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일하는 사람의 보람은 교환가치만이 아니라, 그의 노동의 결과가 만들어 내는 사용가치와 그것의 실현에 있다.

일하는 사람은 그의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생산물의 사용가치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실현될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교환가치나 칭송과 같은 보상은 어디까지나 그러한 활동의 부산물이다. 그러한 희열은 그의 노동의 자발성과 자율성이 높을 때 더욱더 커진다. 이렇게 일에 몰입하는 이들은 사회통합에도 순기능적이다. 인간은 거대한 현대사회의 분업구조 내에서 하나의 기능인으로 그 사회에서 정체성을 획득하고 통합되어 들어가기 때문이다.

성과연봉제의 도입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시끄럽다. 행여 정책의 도입으로 제어하려는 문제가 일과 노동이 개인과 사회에 대해 가지는 이러한 깊은 의미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된다. 일하는 이들의 행복이야말로 국가경쟁력의 최고의 기반이다. 행복의 절정은 일을 통한 만족과 존엄을 경험함에서 찾아진다. 일하는 사람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사회, 그런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정책이 만들어 내는 불행한 조직과 사회는 결국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마이너스로 귀결될 것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