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로 창문 부숴 일부 탈출…여행기간 모두 형제 같았는데"
"'쿵' 하고 충격이 온 뒤 버스에 불이 나고 순식간에 전등이 꺼지면서 암흑천지에 비명으로 가득 찼습니다."
"비상망치가 없어 버스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승객들이 온 힘을 다해 유리창을 손과 발로 부수려 했습니다."
13일 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경부고속도로 언양IC부근 도로에서 승객 10명이 화재로 숨진 관광버스에 타고 있던 여행 가이드 이모(43)씨는 끔찍한 사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씨도 사고 당시 승객들을 구조하려다가 오른손에 화상을 입고 울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이씨가 여행가이드로 따라나선 중국 여행 승객 19명을 실은 관광버스는 13일 오후 7시 55분 대구공항에서 울산으로 출발했다.
4박 5일 일정으로 간 중국에서는 당초 이날 오후 2시 50분 비행기가 예약됐지만, 시간이 늦춰지면서 오후 4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버스 승객들은 대구공항을 출발해 경주 건천휴게소에 도착해 식사하려 했지만, 식당 문을 닫아 평사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고 다시 움직였다.
울산 가까이 접어든 오후 10시 5분이나 10분 사이 비상 깜빡이를 켜고 편도 1차로를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2차로 방향을 틀면서 '쿵' '쿵' 수차례 충격음을 내며 콘크리트 분리벽을 들이받았다.
당시 스마트폰을 하고 있던 이씨는 깜짝 놀랐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충격한 버스가 100m 이상 분리벽에 부딪힌 채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버스가 멈추자 곧바로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풀어라"고 외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버스 조수석 출입문 쪽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버스 출입문은 분리벽에 막혀 열리지도 않았다. 불이 났지만 밖으로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승객들은 순간 유리창을 깨야 한다는 판단으로 주먹과 발로 유리창을 쳤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씨도 살아남기 위해 수차례 유리창을 발로 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이 난지 10초 정도나 지났을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엔 버스에 전등이 꺼져 암흑천지로 변했다.
이씨는 "화재 연기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움속에서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때 버스 운전기사가 어디서 찾았는지 소화기를 들고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있던 이씨 자리로 와서 유리창을 깼고 그곳으로 일부 승객이 밖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어두워서 비상망치를 찾지 못했고 운전기사가 찾은 소화기마저 없었더라면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메케한 화재 연기 때문에 정신을 잃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지만, 대여섯 명이 깨진 유리창문을 통해 먼저 빠져나왔다.
탈출에 성공한 이씨와 버스기사, 승객들은 다른 승객들에게 '나오라'고 외치며 탈출을 도왔다. 그렇게 서너 명이 더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두 10명이 탈출에 성공했다.
먼저 나온 이들은 또 돌로 버스 유리창을 깨서 나머지 승객들을 구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길이 버스를 걷잡을 수 없이 휘감았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승객들은 함께 나오지 못한 옛 직장 동료과 가족 때문에 애통해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승객들이 대부분 한 직장의 퇴직 가족이었는데 여행 기간 한가족과 형제처럼 지내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고했다.
그는 "너무 갑작스러운 사고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정말 안타깝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씨는 그러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났을 때 재빨리 탈출할 수 있도록 버스에 장비들을 갖춰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씨는 "버스에 불이 나거나 비상 상황 때 승객들이 탈출하기 위해서는 유일한 방법이 비상망치로 유리창을 깨는 것"이라며 "버스 전등이 나가더라도 비상망치는 잘 보이는 곳, 앞뒤, 중간 곳곳에 놔두거나 아예 자리마다 비상망치를 비치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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