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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톤베리를 홀린 비아트리오, 이제 파리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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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톤베리를 홀린 비아트리오, 이제 파리로 갑니다!

입력
2016.10.1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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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아시아 최초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비아트리오

2013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현장. 비아트리오는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축제에 참여였다. 이 해에 ‘러블리 비아’라는 별칭을 얻었다. 주요 관계자로부터 “글래스톤베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팀”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4년, 3개의 한국팀이 심사를 통과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2013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현장. 비아트리오는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축제에 참여였다. 이 해에 ‘러블리 비아’라는 별칭을 얻었다. 주요 관계자로부터 “글래스톤베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팀”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4년, 3개의 한국팀이 심사를 통과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2015년 여름, 월드뮤직앙상블 비아트리오를 이끄는 송힘(43) 대표는 모 국내 음악 페스티벌 관계자에게 전화 한통을 받았다. 페스티벌에 참여하려고 신청서를 냈는데 프로필에 기재한 이력 한줄이 문제가 됐다. ‘한국 최초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초청됐다’는 구절이었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한국 최초로 초청된 팀은 예고 다니는 애들도 압니다. 그 페스티벌이 어떤 덴지나 알고 이렇게 쓴 겁니까?”

물론 잘 알고 있었다. 1970년 시작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은 매년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싯의 글래스톤베리에서 5일간 개최되며, 축제 기간 동안 100여 개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1000여 개의 공연과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전 세계에서 20만에 가까운 관객이 몰리는 세계 최대, 최고의 음악 페스티벌로 축제 시작 1년 전에 표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송 대표는 잠시 당황했지만 마음을 추슬러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팀이 글래스톤베리에 최초로 초청된 건 사실입니다. 2011년에 처음 갔었고, 2년 뒤에 또 초청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그 팀은 2014년에 한국 뮤지션 중 두 번째로 간 거구요.”

이어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터넷을 검색하는 듯했다. 몇 분 후 잔뜩 주눅이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 죄송합니다. 비아트리오가 최초로 참여한 게 맞네요.”

송 대표가 “국내 활동이 많이 없어서 모를 수도 있다. 괜찮다”고 대답하자 그쪽에서 다소곳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왔다.

“글래스톤베리는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이 신청해도 될까 말까한 곳인데, 어떻게 이름도 낯선 팀이 어떻게 참가한 겁니까?”

2011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축제 현장. 보통 20만 내외의 관람객이 운집한다.
2011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축제 현장. 보통 20만 내외의 관람객이 운집한다.

- 무작정 떠난 유럽 음악 여행의 결과는

비아트리오는 CCM 연주를 목적으로 2007년에 결성됐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이주희(37)씨를 중심으로 대학 동기 2명이 의기투합했다. 팀 결성 후 매달 만나 한 달에 한번 커피숍에서 정기 공연을 했다. 규모는 미약했지만, 스케일은 만날 때부터 창대했다. 이들은 CCM 곡 외에도 우리 귀에 익숙한 서양곡과 한국음악을 섞어서 연주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했다. 특히 아리랑을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동시에 연주하는 시도는 단연 이목을 끌었다.

2009년, 이들은 ‘아리랑을 알리기 위하여’유럽으로 떠났다. 차를 타고 다니며 광장과 마주치면 내려서 연주를 했다. 그해부터 지금까지 25개국, 60여개 도시를 돌며 해외 연주 활동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영국이었다. 런던 구세군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에서 ‘고향의 봄’에 ‘데니보이’를 얹은 연주곡을 선보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다음 목적지는 그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였다.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해 그간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였다. 우리 가락을 외국곡과 믹싱한 곡들이 큰 호응을 받았다.

에든버러 참여가 계기가 되어 2011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았다. 에든버러에 갔다가 비아트리오의 음악에 관심을 보였던 현지 한국인 기획자의 소개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관계자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샘 허미티지(Sam Hermitage),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주요 기획자 중의 한명이다. 그는 “비아를 페스티벌에 초대하고 싶다”면서 심사 자료를 달라고 했다. 음원과 동영상 자료를 영어 설명까지 붙여서 전송하라고 했다. 요구하는 자료의 분량이 만만치 않아서 넌지시 “요구 사항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을 모르는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라.”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고 나서야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일에 발을 담그게 되었는지 깨달았다. 서울의 쟁쟁한 팀들을 제치고 지방에서 결성한 팀이 제일 먼저 진출한다는 사실이 숫제 충격으로 다가왔다.

2009년 첫 유럽 음악여행 때 하이델베르크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모습. 경찰의 제지로 공연을 못할 뻔 했지만 유명한 초콜릿 가게 주인이 배려해준 덕에 가게 앞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가게 주인인 할머니가 장미 꽃잎으로 거리 무대를 아름답게 꾸며주었다.
2009년 첫 유럽 음악여행 때 하이델베르크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모습. 경찰의 제지로 공연을 못할 뻔 했지만 유명한 초콜릿 가게 주인이 배려해준 덕에 가게 앞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가게 주인인 할머니가 장미 꽃잎으로 거리 무대를 아름답게 꾸며주었다.

-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 선택한 ‘현의 메나리’

글래스톤베리에선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에 도착해서 안 사실이지만 입장권만 30만 원이었다. 그해 메인 무대에는 U2, 콜드플레이, 비욘새가 섰다. 그들을 코앞에서 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점심을 먹고 광장을 산책하다가 한가로이 걸어가는 ‘블루스의 제왕’비비 킹(B.B. King)을 마주친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리더인 이주희 씨는 “너무 뜻밖이어서 당황한 탓에 말도 못 붙여본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고 했다.

더 신기했던 것은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이었다. 가기 전만 하더라도 반신반의했다. 동양에서 온 까만 머리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음악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이해해줄까 하는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우였다. 비아의 음악이 세계에 통한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확인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곡은 ‘현의 메나리’였다. 이 작품은 여러 지방의 민요에서 착안한 선율을 가져와 해금과 바이올린이 시나위처럼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도록 구성했다. 6분의 연주가 끝나고 나자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모습을 본 월드뮤직 파트 매니저가 비아를 불렀다. 월드뮤직 파트 운영진이 모인자리에서 다시 한 번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연주를 시작한 지 1분도 안 돼 앞에 섰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다시 2분 뒤, 자리를 떴던 사람들이 관계자들을 몽땅 불러왔다. 5~6명이던 관객이 수십 명으로 늘었다. 이 공연에서도 모두 일어서서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그 덕에 비아는 더 큰 무대로 옮겨서 공연을 했다.

그와 함께 괄목할 만한 연주를 한 팀에게 부여되는 녹음 기회도 얻었다. ‘현의 메나리’는 2011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축제 중에 재녹음을 했다. 곡이 주목받으면서 일정에 없는 토요일 공연까지 꿰찼다. 그 덕에 아시아 팀 최초 참가라는 타이틀을 넘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팀으로 각인되었다. 비아의 이런 활약은 BBC에서 취재를 해갔을 정도로 눈에 띄는 것이었다.

2011년 처음으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그해, 축제 현장에서 녹음 기회를 얻었다. 핫스타로 부각된 팀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였다. 곡목은 ‘현의 메나리’. 친환경을 표방한 녹음실이라 벽의 마감재가 짚이었다.
2011년 처음으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그해, 축제 현장에서 녹음 기회를 얻었다. 핫스타로 부각된 팀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였다. 곡목은 ‘현의 메나리’. 친환경을 표방한 녹음실이라 벽의 마감재가 짚이었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주요 기획자 중의 한 사람인 샘 허미티지(Sam Hermitage)와 포즈를 취했다. 밀짚모자를 쓴 친근한 표정의 노신사가 샘이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주요 기획자 중의 한 사람인 샘 허미티지(Sam Hermitage)와 포즈를 취했다. 밀짚모자를 쓴 친근한 표정의 노신사가 샘이다.

- 덴마크의 한국 입양아들을 위해 글래스톤베리를 포기

비아는 2013년에도 초청을 받았다. 이번에는 무용 팀까지 데리고 갔다. 특별한 애칭도 얻었다. ‘러블리 비아’. 하루 2~3회씩 공연을 하면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페스티벌 핵심 관계자들로부터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팀”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14년에도 어김없이 초청장이 날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사했다.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몇몇 그룹이 참가 신청을 했다가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내 인지도가 훨씬 높아져 있었다. 누가 봐도 아까운 기회였던 것이다.

비아가 참여를 고사한 것은 ‘김치 페스티벌’때문이었다. 이 페스티벌과의 인연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글래스톤베리에서 연주 활동을 마친 뒤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서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주최 측의 참여 요청이 간곡했다. 그들에 따르면 덴마크 입양아가 9,000명으로 한국의 문화를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하는 이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주최 측에서는 비아가 아이들에게 한국의 음악과 문화를 맛볼 기회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듬해에도 참여하기로 약속을 해두었는데, 2014년 페스티벌 일정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과 겹친 것이었다. 비아는 자신들의 연주에 환호를 보내던 입양아들과 그들의 부모들의 얼굴이 눈에 밟혀 과감하게 덴마크 행을 택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었다. 이미 장성해서 분가한 입양아들의 부모들이 만든 모임에서 온 이들이었는데, 그들은 비아의 공연을 본 후 “아이들을 키운 보람이 있다. 보답을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눈가가 촉촉해지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편, 그해 한국에서 3개 팀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방송팀이 동행해 한국 팀들의 활약을 영상에 담았을 정도로 대중문화 부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조용히’다녀온 비아와 비교할 때 성대하기 이를 데 없는 조명을 받은 것이었다. 이 때문에 국내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 2014년이 한국 뮤지션의 글래스톤베리 진출 원년으로 각인됐다. 비아에게는 달갑지 않은 부작용이었다. 3회 참여라는 기록을 포기하면서 ‘최초’라는 타이틀마저 잊힐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우연히 만난 한국인 입양아와 함께. 이름이 ‘이나’라고 했다. 한국적인 음색에 끌려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응했다. 중앙에 선 이가 이나다.
우연히 만난 한국인 입양아와 함께. 이름이 ‘이나’라고 했다. 한국적인 음색에 끌려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응했다. 중앙에 선 이가 이나다.
김치페스티벌 중 한복 입어보기 코너에서 포즈를 취했다. 송힘 대표는 “비아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간의 고생을 모두 보답 받은 기분이라고 고백하던 입양아 부모들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치페스티벌 중 한복 입어보기 코너에서 포즈를 취했다. 송힘 대표는 “비아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간의 고생을 모두 보답 받은 기분이라고 고백하던 입양아 부모들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혹자는 비아가 2014년 영국 대신 덴마크로 향한 것을 두고 “명운이 갈렸다.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하지만 비아의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보면 덴마크 행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비아는 음악 활동만큼이나 사회적인 부분도 중요하게 여긴다.

비아 트리오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재능 기부를 시작했다. 그해 기아대책홍보대사를 맡았다. 그러면서 김해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와 연결됐다. 일일교사로 참여해 악기를 지도했는데, “악기를 지속적으로 배우도록 해주고 싶다”는 센터장의 말에 송 대표와 비아 멤버들은 선뜻 매년 음악 캠프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센터의 열악한 상황이 비아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이들이 거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보니 다수가 ADHD 증세를 보였고, 만 10세가 되면 소년원으로 직행하는 걸 당연하게 여길 정도였다. 비아가 처음 방문했을 때 중3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이 단 한 명이었다.

비아 멤버들은 음악 지도와 함께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송 대표는 센터장과 협의해 매년 가족음악회를 열기로 하고 음악 캠프를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늘 “무대에 서는 사람의 자세”를 강조했다. 음악과 공연을 통해 자존감을 형성시키려는 것이었다.

음악 캠프를 통해 연습을 해서 무대에 서는 과정을 반복하자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었고, 장래희망을 물으면 “없다”고 하던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왔을 때 중3이던 소년은 요리사로 성장했다. ‘스카우트’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만 대면 아는 식품 회사에 스카웃됐다.

아이들의 실력도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국내 아마추어 유소년 연주팀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송 대표는 “단순히 음악 실력뿐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도 함께 자랐다”면서 “비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연은 이듬해부터 유료화 했으며, 수익금은 전액 기아대책본부에 기부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기부 대상에서 기부 주체로 탈바꿈한 것이다.

2015년 ‘세상을 바꾸는 음악을 배우다’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공연. 김해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소속된 아이들에게 재능기부로 악기를 가르쳐 무대에 세웠다. ‘씨앗앙상블’이라는 특별한 이름도 지어줬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15년 ‘세상을 바꾸는 음악을 배우다’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공연. 김해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소속된 아이들에게 재능기부로 악기를 가르쳐 무대에 세웠다. ‘씨앗앙상블’이라는 특별한 이름도 지어줬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 비아, 유럽에서 음악 페스티벌 주최할 것

“이런 팀이 왜 꽁꽁 숨어 있습니까?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하세요.”

대뜸 전화를 걸어와 “거짓말 하지 말라”던 국내 페스티벌 관계자가 오해가 풀린 뒤 진지한 충고를 덧붙였다. 세계 최고의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고도 조용히 묻혀 있는 현실을 답답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잠시 휴지기를 가진 비야는 2017년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정했다. 멤버 보강 등 전열을 재정비해서 ‘아리랑’과 ‘현의 메나리’를 들고 유럽으로 간다. 처음처럼 공격적으로 유럽의 심장에 파고들 생각이다.

“비아는 초대한다고 가고 안 한 다고 안 가는 그룹이 아니었습니다. 초청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저돌적으로 무대를 개척해왔습니다. 그것이 비아가 자립에 성공한 뮤직앙상블이 된 저력일 것입니다.”

이번에는 파리다. 거리 공연과 유명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만난 해외 뮤지션과 함께 페스티벌을 만들기로 했다. 프랑스 뮤지션 삐에르 파(pierre faa)가 이끄는 음악 팀과 손을 잡았다. 이 팀은 ‘또오해영’ 4편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감탄’의 음악 작업에 참여하면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들과 함께 몽마르뜨 소극장을 대관해 이곳을 중심으로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다.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만큼 각오도 각별하다.

“팀 분위기가 2009년 처음 유럽으로 진출할 때와 비슷합니다. 활기와 기대가 그득합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습니다. 우리 음악이, 지역의 ‘메나리’가 세계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으니까요. 두려움이 똬리를 틀고 있던 자리엔 이제 ‘앞으로 또 어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하는 기대만 그득합니다. 비아 트리오의 새로운 비상을 지켜봐주십시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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