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후미진 한옥동네에 햇볕 들자… 젠트리피케이션 먹구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후미진 한옥동네에 햇볕 들자… 젠트리피케이션 먹구름

입력
2016.10.13 20:00
0 0

100년 한옥 110여채 옹기종기

개발제한에 빈곤층 거주지 전락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4번출구에서 낙원상가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익선동골목길’이 시작된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차 보일 정도의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 익선동 일대에는 100년 가까이 된 한옥 110여 채가 모여있다.

개발제한에 묶여 낡고 수리도 안 된 옛 건물들에 주로 빈곤 노년층이 거주하며 도심 속 슬럼지역으로 통하던 익선동 한옥마을에 지난해부터 젊은 상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다. 치솟는 주거비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익선동에 터를 잡고 한옥을 찻집과 음식점을 비롯해 공방과 게스트하우스로 꾸몄다. 익선동이 차차 슬럼지역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상권으로 뜨게 된 이유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에 위치한 복고풍 레스토랑 '경양식1920' 앞에서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익선동 한옥마을에는 전통과 젊음이 어우러진 특색 있는 가게 40여 곳이 생겨난 후 활기를 찾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에 위치한 복고풍 레스토랑 '경양식1920' 앞에서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익선동 한옥마을에는 전통과 젊음이 어우러진 특색 있는 가게 40여 곳이 생겨난 후 활기를 찾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젠트리피케이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는 마을

12일 찾은 익선동에는 약 40여개의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이들 가운데 낮에는 카페로 영업하다 밤에는 바(BAR)로 변신하는 ‘식물’이나 병맥주를 구입한 가게 한 편에서 간편 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시는 가게맥주(가맥)집인 ‘거북이슈퍼’, 그리고 뻥 뚫린 사각형 모양의 한옥 건물과 가운데 마당에 7개의 음식매장이 영업하는 ‘열두달’ 등 몇몇 가게는 이미 명소로 자리잡았다. 서울 시내 번화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명 대형 프랜차이즈 하나 없는 이 곳은 요즘 유행에 좀 민감하다는 이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핫 플레이스’다.

작년부터 젊은 상인ㆍ예술가 몰려

이색 음식점ㆍ게스트하우스 단장

북촌ㆍ서촌과 다른 ‘핫 플레이스’로

이날 오후 친구와 익선동을 들렀다는 최미정(25)씨는 “요즘 이색 맛집을 소개하는 블로그에서 단골장소로 빠지지 않는 게 익선동 가게들”이라며 “과거의 모습에 젊음의 활력이 더해져 색다른 느낌이 나는 곳들이 많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미정(31)씨는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익선동을 찾았다”며 “같은 한옥마을인데도 이미 관광지화된 북촌ㆍ서촌과는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익선동 한옥마을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낙후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이 활성화하자 임대료가 오르며 원주민이 퇴출되는 현상)이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주변 종로3가지역의 임대료와 비교할 때 아직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익선동이 북촌(삼청동)과 서촌(통의ㆍ효자동)에 이어 지난해부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상권으로 급부상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익선동 한옥상가 임대료는 최근 1년 새 15% 가까이 올랐다.

익선동 주택은 지난해만해도 3.3㎡당 3,000만원 미만의 가격에 매물이 나왔지만, 현재 이 지역 매매 시세는 3.3㎡당 3,500만~3,700만원 선까지 치솟았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에 3.3㎡당 4000만원에 팔린 건물이 나왔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특히 지난달 창덕궁 건너편 돈화문로 초입에 국악 전문 공연장이 개관하는 등 점차 관광인프라까지 늘면서 가격은 더욱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크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지난 2004년 재개발이 가능한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2014년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해체되면서 결국 재개발 추진이 무산됐다. 재개발 무산에 따라 주민들은 도시환경정비구역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익선동 한옥마을 주변 지역은 지구단위계획으로 관리되는 상태다. 만약 익선동 한옥마을이 도시환경정비구역에서 곧바로 해제될 경우 이곳만 도시계획 적용을 받지 않는 난개발 지역이 된다는 의미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위한 민관 협력 필요해

서울시는 지구단위계획과 주민공동체 활동지원을 통해 도시한옥의 특성과 지역성을 지켜나가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익선동 165번지 일대(총면적 3만1,121㎡) 한옥마을에 대한 지구단위계획 구역 지정 추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는 익선동을 재개발구역에서 해제하지 않은 채 지구단위계획을 수립 중이어서 본격적인 신ㆍ증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올해 말까지 진행하는 관련 용역 결과를 토대로 익선동 한옥마을의 지구단위계획을 확정한 뒤 도시환경정비구역에서 해제할 계획이다.

상권 뜨자 젠트리피케이션 고개

한옥상가 임대료 1년 새 15%↑

市 “주민공동체 지원 통해 방지”

서울시 관계자는 “북촌과 서촌 한옥마을 지구단위계획 수립에도 적용해 무분별한 개발을 막은 경험을 익선동 개발에도 적용한 것”이라며 “익선동을 북촌, 서촌과 같은 서울시 공식 한옥마을로 지정하는 방안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도시환경정비구역이 해제되는 한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되더라도 내년부터 임대료가 크게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세입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지구단위계획 수립이 익선동 한옥마을의 무분별한 개발은 막을 수 있겠지만, 상권 활성화에 따른 임대료 상승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줄지는 의문이란 것이다. 시 관계자는 “토지용도가 주거지역인 서촌이나 북촌과 달리 익선지구는 상업지역”이라며 “상업지역을 주거지역만큼 강하게 규제하지는 못하겠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주민 의견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주민공동체 활동을 지원해 지역민들의 유대감을 고취시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계획도 준비 중이다. 시 관계자는 “익선동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공동체 활동을 지원해줄 시범사업을 조만간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네 주민들과 익선동을 터전으로 하는 자영업자들도 공동체모임인 ‘익선포럼’등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 없이 익선동을 개성 있는 상업지역으로 가꾸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익선동은 입지가 뛰어나고 역사적 가치도 커 상업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며 “급속한 상업화를 조절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이로 인해 침해된 재산권은 보상해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