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ㆍ트럼프 아웃사이더 돌풍
美 정치권의 대변화 열망 불구
절충과 포용의 정치 자취 감춰
美 우선주의 고착화 양상
인종 차별에 기반한 구애도 여전
여러가지 모순 안은 미국 사회
안정과 불안 유권자에 달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두 후보 사이의 지난했던 대통령 선거전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와 공직 경험이 전무한 정치신인 후보간의 경쟁이었다. 이에 대하여 대다수 한국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과거와 너무나도 구분되는 특이한 선거라고 평가하는 듯 하다. 하지만 미국 정치학자들은 이번 대선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미국이 처한 현실과 모순을 잘 보여주며, 앞으로 미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시사점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2016년 대통령 선거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으로 대표되는 아웃사이더의 돌풍이다. 1950년대 말에는 70% 이상의 미국인이 ‘정부를 신뢰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고작 19%만이 ‘그렇다’고 한다. 누군가가 나타나 워싱턴 정가와 미국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줬으면 한다.
둘째, 보호무역주의와 반 이민자 정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국 우선주의 또는 고립주의가 광범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소위 ‘신 자유주의’로 불리는 미국식 시장경제제도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자유무역과 시장경쟁의 결과, 미국이 적자를 보자 기피 대상으로 전락했다.
셋째, 민주ㆍ공화 양당과 그 지지자들은 양극화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정당과 후보에 대한 충성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부정적 정보에도 지지도가 낮아지지 않는다. 또 반대 진영과 후보에 대한 적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이런 특징들은 사실 과거 수십 년 동안 쌓여온 미국 정치의 결과물이다. 우선 가장 중요하고 오랜 요인은 인종과 빈부를 둘러싼 갈등이다. 형식적으로는 이미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실제로는 아직 버젓이 존재하고, 이것이 흑인의 빈곤문제와 연계되어 점점 더 치유하기 힘든 지경으로 악화되고 있다.
많은 백인들은 ‘우리는 흑인 대통령을 뽑기까지 했다. 차별의 시대는 갔다’고 주장하지만, 수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것은 착각이다. 횡단보도에서 흑인 남자는 백인 남자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자동차를 보내고 나서야 길을 건널 수 있다. 맹장염으로 응급실에 온 흑인 아이는 백인 아이에 비해 약한 진통제를 처방 받으며, 심지어 전과 기록이 있는 백인이 전과 없는 흑인 구직자보다 면접 기회를 많이 얻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트럼프가 1차 TV 토론회에서 언급한 ‘불심검문’(stop-and-frisk)도 바로 인종차별의 예이다.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차량 파손 흔적이 있으면 차량을 세워 더 심각한 법률 위반이 있는지 조사해 보는 제도인데, 그 표적이 주로 유색인종 저소득층이다. 기록에 따르면 불심검문을 당한 흑인의 1%만 무기나 밀수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백인은 그 비율이 1.4%였다. 특정 인종이 교통법규를 더 무시한다는 증거도 없으며, 마약을 하는 비율이나 마약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비율도 백인과 흑인이 비슷하다. 하지만, 정치적인 힘이 약하고 저항이 그만큼 적어서 더 쉽게 위반 사실을 적발해 실적으로 올릴 수 있는 흑인 동네에 경찰이 자주 가게 되고, 이로 인해 흑인들은 아주 사소한 경범죄로도 잡힐 확률이 높아지며 정작 범칙금을 낼 경제적인 여유는 없어서 빚을 지고 과태료와 경찰 수배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인종 갈등이 빈곤 문제와 연계되어 점점 악화되고 있지만, 정작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그 본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에 치우쳐 있다. 민주당도 선거에서 손쉽게 표로 이어질 수 있고 보다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저소득층 보조금 정책에 적극적이다. 이것은 단기적으로 소수인종 저소득층을 도울 수 있을지 몰라도 백인들이 가지고 있는 ‘게으른 흑인’ 이미지를 오히려 더 강화시켜서, 갈등의 근원을 해소할 자원과 여유를 없애고 있다. 이에 인내심이 다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흑백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트럼프 후보가 “법과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자 크게 공감했다.
여기에 이제는 히스패닉 인구가 급증하며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도 생겼다.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것도 불사하며 기존 저학력 백인들이 담당하던 직업을 히스패닉들이 꿰차기 시작했다. 흑인들과는 달리 ‘게으름’ 이미지도 없고 정부 보조금을 축내지도 않지만, 불법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것이 문제였다. 비록 히스패닉 인구의 10% 정도만 불법 이민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많은 백인들은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을 것이라는 트럼프에 열광했다.
더 큰 문제는 인종과 빈곤을 둘러싼 갈등이 ‘정당 양극화’(party polarization) 흐름에 휘둘려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 양극화는 일반적으로 민주ㆍ공화 양당간의 이념적ㆍ정책적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각 정당 내부의 결집력은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1960년대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기 위한 민권운동을 거치면서 민주당이 남부를 포기하고 이념적으로 진보임을 명확히 했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통치 기간 중 전통적 보수세력이 종교와 연대하며 신보수의 깃발로 뭉쳤다. 최근에는 각 정당의 중도파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며 연방정부에서 타협과 조정의 정치가 실종되고 갈등과 배제의 정치가 이를 대체했다.
정당 양극화와 타협의 실종은 유권자들이 점점 극단적 선택을 선호한 결과라는 측면에서는 일정부분 책임이 유권자들에게 있다. 하지만 교착상태가 장기화되어 동시에 많은 미국 국민들이 정부가 자신들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클린턴을 공격할 때마다 ‘30년동안 뭐했나?’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의회 선거에 출마한 거의 모든 후보도 자신이 워싱턴 정치에 물들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동시에 구체적인 정책 이슈에 대해 논의할 때는 민주ㆍ공화 양당 후보 모두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만족시키는 대안으로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반대당 지지자들은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제시하더라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클린턴이 불법이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제시하더라도 공화당 지지자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반대로 트럼프가 일탈 행동을 멈추고 진지한 정치인의 모습으로 인종 및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주장하더라도 민주당 지지자들은 결코 트럼프를 지지할 의사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정당 양극화는 보다 포용적인 정책을 제시할 인센티브를 없애고 후보자들이 본인의 지지자들에게만 집중하도록 하는 협소함을 야기시켰다.
더구나 이런 양극화가 계속 지속될 경우 미국 사회의 안정성에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정당 양극화가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경향이다.
20세기 초 민주ㆍ공화 양당의 이념적 차이가 적어지면서 소득 불균형이 완화되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정당 양극화가 소득 불균형을 악화시켰다. 양극화가 보다 극단의 정책을 추진하게 유도하며 이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기권하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정책이 통과되도록 돕는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교육을 많은 받은 시민들은 투표에 꼭 참여함으로써 공화당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부를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손쉽게 달성하는 셈이다.
요컨대 미국이 앞으로 안정된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느냐는 2016년 대선과정에서 목격한 여러 모순들을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과 ‘기회의 땅’이라는 찬사는 결국 미국 국민들 스스로의 힘으로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박홍민ㆍ미국 위스콘신대(밀워키)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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