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측 강제성 진술 여부 따라
전체 사건 수사 방향 달라질 듯
재단법인 미르ㆍK스포츠를 둘러싼 의혹이 날로 확산되면서 검찰 수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두 재단의 초고속 설립 허가 과정, 수개월 만에 약 800억원의 거액을 끌어모은 사실 등 권력형 비리의 냄새를 풍기는 정황이 속속 공개되는 가운데, 검찰이 과연 정권실세의 개입 의혹을 낱낱이 규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형식적인 수사 절차는 이미 시작됐다. 이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한웅재)는 지난 11일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 운영대씨를 고발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윤씨는 지난달 29일 K스포츠ㆍ미르 설립의 배후로 지목된 최순실(60)씨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두 재단에 기금을 낸 63개 기업 대표 등을 뇌물 또는 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의 시각으로 석연치 않은 점 투성이라 해도, 속전속결 수사를 이끌어낼 범죄혐의는 엄연히 구별된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고발장에 적시된) 뇌물죄로 수사하는 게 맞는지 고민 중”이라는 검찰 관계자의 언급은 수사 단서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검찰이 참고할 만한 선례로는 일해재단 비리 사건이 꼽힌다. 1983년 버마 아웅산 폭발사고 유가족 지원 명목으로 설립된 일해재단의 실제 목적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퇴임 후 대비용이었다. 84년 3월~87년 12월 대기업들로부터 총 598억5,000만원의 출연금을 받아냈다. 정권 실세가 개입해 대기업으로부터 강제모금한 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미르ㆍK스포츠와 대단히 유사하다.
당시 검찰 수사의 계기는 88년 11월 5공비리 청문회였다.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은 국회에 나와 “수백억원씩 목표액을 정해 놓고 기업 돈을 가져간 게 강제 아니냐”고 폭로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할 수 없이 편히 살려고 냈다”고 했다. 검찰은 다음달 ‘5공비리 특별수사부’를 구성해 10억원 이상 기부금을 낸 기업인들을 줄줄이 소환조사했고, 일해재단 비리와 관련해 장세동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 2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강제모금’ 행위는 전혀 처벌되지 않았다. 검찰은 장 전 실장을 ▦일해재단 부지의 건축제한 완화 압력 ▦이사회 결의 없이 일해재단 영빈관 건립 지시 등 직권남용 및 대통령경호실법 위반 혐의로만 구속기소했다. 김인배 전 일해재단 사무처장도 익명의 기부금 15억원을 빼돌려 개인 계좌에 입금, 9,000여만원 상당의 이자를 가로챈 혐의(횡령)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모금 과정에서 강제성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기업들에 대한) 특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맹탕’ 수사결과만을 발표했고, “수박 겉핥기식 수사” “변죽만 울렸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관건은 기부금을 낸 기업 측의 진술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금품 공여자가 강제성 여부나 금품의 성격에 대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체 사건의 ‘그림’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기업들에서 어떤 진술이 나올지 속단하기 어렵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안종범 수석이 전경련에 얘기해서, 전경련에서 일괄적으로 기업들에 할당해 모금한 것”이라는 대기업 관계자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그 동안 “기업들이 기부금을 자발적으로 냈다”고 했던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도 12일 “그런 데도 있고, 아닌 데도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미르ㆍK스포츠 사태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 ‘권력형 게이트 수사’로 비화할지는 결국 검찰의 수사의지에 달려 있다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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