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파업중인 철도노동자의 딸입니다. 아버지의 파업이 자랑스럽습니다. (파업 원인인)성과연봉제 도입은 수익을 우선시해 공공운수의 안전과 공공성을 먼저 위협할 것입니다.”
서울에 사는 재수생 임정민(19)씨가 최근 지하철 1호선 개봉역에 붙인 대자보 내용이다. 그는 파업 중인 아버지를 지지하기 위해 ‘#불편해도괜찮아’로 시작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임씨 뿐만이 아니다. 부산에 사는 조은하(23·경성대)씨도 부산 경성대와 부경대역등에 ‘#불편해도 괜찮아’대자보를 붙였다. 그는“인간의 안전할 권리와 생명은 정부의 이윤추구를 위한 인질이 아니다”라며 파업 지지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전국 철도노조의 파업이 17일째 이어지며 장기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새로 등장한 풍속도가 있다. 바로 ‘#불편해도괜찮아’라는 해시태그(#)를 붙인 대자보 바람이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서 같은 주제를 묶을 때 사용하는 #를 종이 대자보에 적용한 것이다. 페이스북 ‘불편해도 괜찮아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 페이지에 13일 현재까지 게재된 대자보 사진만 37건이다.
이 같은 대자보 행렬은 청년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대자보 붙이기에 앞장서는 이유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남다른 우려 때문이다. 이들은 2014년 세월호 사고와 지난 5월 발생한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으로 또래의 죽음을 지켜본 경험 때문에 철도 등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될 경우 또다시 안전 문제가 불거질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경쟁과 효율을 중심으로 실적이 평가되면서 정작 안전이 도외시 될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불편해도 괜찮아’ 페이지를 운영하는 대학생 엄재희(27) 씨는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공공기관에 성과제가 도입되면 지금보다 더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에서 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대자보 붙이기에 나선 청년들 사이에서는 성과연봉제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정부에서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신규 고용 창출이 늘어날 것으로 강조했으나 이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이들은 취업을 앞둔 세대여서 성과연봉제 확산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경희대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인 대학생 권은혜(22)씨는 “성과연봉제가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 등 불안정한 일자리를 만들 공산이 크다”며 “청년들이 진정 원하는 질 좋은 일자리 확대와 거리가 먼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또 대자보를 붙인 청년들은 철도 파업을 귀족 노조의 밥그릇 싸움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겨냥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지키자 공공성, 끝내자 성과 퇴출제, 청년학생 네트워크’의 한숙인(25)씨는 “저성장과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은 기존 노동자들 때문은 아니다”라며 “위기를 만들어낸 경영진이나 정책 실패를 탓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청년들이 붙인 대자보는 경쟁으로 점철된 노동현실에 대한 불안한 두려움이 묻어 있다. 즉 성과연봉제가 취업 후에도 일자리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최서현(20·고려대) 씨는 “좁은 취업 문을 뚫기도 힘든 상황에서 나쁜 일자리까지 늘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대자보를 붙였다”고 강조했다. 조은하씨도“취직을 해야 하는 청년들 입장에서 보면 철도 파업의 원인이 된 성과연봉제가 장기적 관점에서 나의 일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한설이 인턴기자
최유경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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