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 등장한 공 모양의 로봇 ‘BB-8’을 만들어 잭폿을 터트린 로봇 스타트업 스피로의 창업자 이언 번스틴(33)의 학력은 국내 기준으로 보면 평균 이하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홈스쿨링을 해 사실상 초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셈이고, 대학도 뉴멕시코공대와 콜로라도주립대 두 군데를 다녔지만 어느 곳도 끝까지 다니지 않았다.
‘평균 이하의 스펙’에도 그가 이른 나이에 창업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열정’ 덕분이었다. 지난 11, 1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스타트업 콘 2016’에 연사로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그는 한국일보와 만나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열정을 쏟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로봇에 대한 번스틴의 열정은 서 너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히 언제인진 모르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 카세트 플레이어 같은 전자기기를 분해하고 조립하며 놀았습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했지만 학교에 가도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없었어요. 그래서 4학년 때 부모님께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말하고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번스틴에게 취직은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졸업을 1년 앞두고 취업박람회에 가보니 모든 일이 너무도 지루하게 들렸다”며 “내게 맞는 일이 없다면 내가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했다. 일단 학교를 그만두고 웹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창의적인 일이라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고 파트타임으로 로봇 회사에서 일하면서 로봇 관련 기술도 계속 키울 수 있었다.
번스틴에게 영감을 준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2009년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던 중 로봇 내부에 값비싼 콘트롤 보드를 쓰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조종하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다. 그는 “당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스마트폰으로 로봇은 물론 그 어떤 것도 조종한다는 이야기가 없었다”며 “대단히 큰 시장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번스틴은 마음이 통하는 동업자 애덤 윌슨을 만나 창업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빌려 종잣돈을 마련했다.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의 초기 자금과 멘토링 등을 지원하는 단체나 기업)의 도움을 받아 로봇 개발에 착수했다. 번스틴은 스마트폰으로 조종하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동업자와 100개의 아이디어를 쏟아냈지만 마땅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애덤에게 뭔가 단순하고 멋진 게 필요하다고 했더니 구슬이 어떠냐고 하더군요. 그러자 열네살 때 만들었던 공 모양 로봇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나온 게 스피로 1.0입니다.”
2011년 처음 등장한 스피로는 처음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스피로에 날개를 달아준 건 당시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던 디즈니였다. 2013년 디즈니의 최고경영자(CEO) 밥 아이거가 그에게 BB-8 시안을 보여주며 스피로와 모양이 비슷하니 로봇으로 한번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왔다. “당시에는 BB-8이 영화에서 얼마나 큰 비중인지 몰랐지만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영화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흥분됐습니다. 그날 밤 당장 테스트 로봇을 만들어 영상을 아이거에게 보냈죠.”
무명 스타트업 스피로는 BB-8 출시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5년 한 해에만 100만개 이상 팔렸다. 직원 수도 BB-8 출시 전보다 3배가 늘었고 판매점도 2배 이상 늘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로봇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로 로봇을 처음 만들 때 스마트폰으로 작동하는 호텔 도어록을 해보자는 말도 있었습니다. 돈이 더 잘 벌릴 것 같은 아이템이 있었지만 저희는 괴짜 같은 아이디어를 밀어붙였어요. 그렇게 했다는 점이 기쁩니다.”
번스틴의 꿈은 모든 가정이 로봇과 함께하며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지금 로봇이 하는 일은 한정적이지만 언젠가 집집이 로봇을 두게 될 겁니다. 가족의 일원이 되는 거죠. 저녁 식사를 마련해 줄 수도 있고 집을 깨끗이 청소해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줄 수도 있고요. 로봇과 함께하면 가족이 더욱 가까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상과학영화 같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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