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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나보다 더 못하는 것 같다”

입력
2016.10.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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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차라리 더 나았다고 해야 할까. 비극이다. 수많은 비리로 얼룩졌던 이명박 정권이 지금보다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급기야 재임 당시 ‘불통’의 대명사였던 이 전 대통령이 “나도 못했지만 나보다 더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주의의 비극이다. 1987년 6월 피 흘리며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믿었는데 우리는 오늘 민주주의를 위해 또다시 거리로 나서야 할 판이다.

1987년 6월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살인적 최루탄 추방대회’가 30년이 지난 2016년 10월 ‘집회의 자유와 물대포 추방’ 운동으로 계속되고 있다. 최루탄이 물대포로 바뀌었을 뿐 국가의 폭력은 계속되고, 집회의 자유조차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실체다. 도대체 우리는 민주화 이후 30년간 무엇을 한 것일까.

그렇다고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도 아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이명박 정부 동안 약속했던 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2%에 불과했고,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2.9%로 더 나빠졌다. 낮은 성장이라도 그 성과가 공평하게 분배되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4.4%였지만 실질 임금상승률은 1.4%에 그쳤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OECD 최고수준이고,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이 되면 한국은 OECD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가 된다고 한다. 살기 어려워져 사람들은 더 강퍅해지고, 혐오범죄와 반인륜적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민생이 이 지경인데도 청와대는 재벌의 발목을 비틀어 용도가 의심스러운 재단을 설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병우 수석과 관련된 의혹은 진상조차 규명되지 않고 있고, 선한 농부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생명을 잃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양심과 직업윤리마저 내던진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는 퇴행한 민주주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는 시대로 돌아간 것인가.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일이다. 정권교체가 절실하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되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까. 아니다. 정권교체는 우리가 직면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장면 정권은 ‘반공임시특례법’과 ‘시위규제법’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했고, 민주정권 10년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정권교체만으로는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1950년대 이래 지속하고 있는 보수정당체제에 균열을 내지 않는 한 정권교체는 단지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 시민을 위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보수정당체제에 균열을 내야 한다. 사회경제적 여건은 무르익었다. 시민은 민주정부 10년과 보수정부 9년을 거치면서 정권교체만으로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했다. 반세기 넘게 지속한 보수정당체제는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부와 가난을 대물림시켰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권력과 시장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과 시장을 통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세력이 제도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후보와 정당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오랜 권위주의 체제로 인해 아래로부터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가 어렵다면 제도개혁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결선투표제는 독을 품고 있지만, 보수정당체제에 균열을 내고 시민사회를 세력화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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