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보호하고 싶은데... 아빠의 감시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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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보호하고 싶은데... 아빠의 감시라네요”

입력
2016.10.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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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ㆍ교육에 관심 많은 40대 아빠들

자녀는 디지털기기 익숙한 ‘新인류’

SNS 유해성에 놀라 끙끙 앓고

화장하는 초등생 딸과 다투기도

‘내 아버지와 다른 아빠’ 되기 고민

게티이미지뱅크

“아빠 언제 와?” 집에 가니 아이는 또 잠들었다. 오늘도 전화 통화로 아이 목소리만 들었다. 친구(Friend) 같은 아빠(Daddy)라는 ‘프렌디’가 신조어에 이름을 올렸다지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내겐 딴 나라 얘기다. 오전 9시~오후 6시 일과는 그저 원칙일 뿐이다. 아이와 1시간 놀아주면 운수 좋은 날이다. 집에선 누워만 지냈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 다른 아빠로 살겠노라 다짐했건만 어떤 아빠가 돼야 할지 고민할 시간조차 부족한 게 현실이다. 누군들 ‘추아빠(추성훈)’처럼 폼 나는 아빠가 되기 싫을까. (서울 사는 40세 맞벌이 아빠 A씨)

A씨는 사실 가상의 아빠다. 지난해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30~40대 맞벌이 남성 1,000명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오늘날 평균 아빠의 모습을 꾸몄다. 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노동 9시간, 매주 야근 2회 및 회식 1회, 자녀 만남 하루 1시간19분이 평균 아빠들의 시간이다.

맞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선택이든, 가정을 우선하는 새로운 가치관 때문이든 육아에 적극 나서는 아빠들, 프렌디가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아빠들은 자녀, 일, 아내 등과 관련된 다양한 장벽에 부딪친다. 무엇보다 군 복무 경험과 상하관계가 뚜렷한 직장 등 규율이 지배하는 남성문화에 익숙한 아빠들은 디지털기기 사용에 능숙하고 자의식이 조숙한 신(新)인류 자녀들을 대하다 보면 가장 먼저 어느 선까지가 보호이고, 어디서부터 감시인지 헷갈린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직장에 출근한 아빠 박모씨가 12일 오후 한 애플리케이션을 조작해 딸의 휴대폰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SNS 그냥 놔둬도 될까요?” 자영업자 곽모(43)씨

평범한 딸 바보 아빠다. 생업에 여념 없어 아내에게 육아를 상당 부분 맡기고는 있다. 그래도 주말마다 일부러 시간 내 가족과 여행을 떠날 만큼 자녀 사랑이 극진하다고 자부한다. 공부보다 페이스북 ‘좋아요’ 숫자에 몰두하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이 밉기는커녕 깜찍하고 귀여워 최근엔 나도 계정을 만들었다. 딸이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눌러 주는 나를 딸도 좋아라 했다.

여느 때처럼 페이스북을 둘러보던 지난 달, 딸이 친구와 함께 찍어 올린 사진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음란 댓글이 달린 걸 발견하고 나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놀란 마음에 경찰에 신고했더니 “페이스북은 외국 회사라 수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위험한 물가엔 자녀를 내놓고 싶지 않은 게 누구에게나 똑같은 아빠 마음이다. 하고 싶은 건 모두 해주고 싶었던 아빠 철학을 비로소 돌아봤다.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10대 딸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금지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막는 게 능사 아니라지만” 중견기업 차장 박모(45)씨

나 역시 주말마다 딸과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러 다녔고, 어린 딸도 곧잘 따랐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이 화장을 시작하면서 아빠 역할에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입술에 틴트를 바르기 시작한 딸에게 절대 바르면 안 된다고 윽박지른 게 화근이었다. 간섭하지 말라는 예상치 못한 반발이 되돌아왔다. 화장이 곧 일탈인 시대를 살았던 나, 자녀 일탈을 막는 게 아빠가 응당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상황이 심각해 청소년 관련 상담센터까지 방문했다. “자의식이 강한 요즘 아이들은 못 하게 하면 일부러 더 하고 부모와 사이만 틀어진다”는 조언을 받고 나서 어렵게 생각을 고쳐 먹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 딸의 손을 붙잡고 직접 화장품을 사주러 백화점에 간다. 사춘기 딸 마음 다칠까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지만 솔직히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불안하다.

“휴대폰 감시가 사생활 침해라니” 대기업 부장 전모(43)씨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틈틈이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휴대폰에는 딸을 보호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앱)이 깔려 있다. 휴대폰을 원격 조정하는 것은 물론, 전원을 끌 수도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암호를 걸 수도 있다. 동영상과 메신저 사용 시간은 내가 지정하고, 메신저에 불건전한 단어가 포함 돼 있는지 실시간 검색한다.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맞벌이라 돌보미에게 하교를 맡겼다가 길에서 잃어버릴 뻔 한 뒤 일찌감치 휴대폰을 사줬다. 몇 시간씩 휴대폰 게임과 유튜브 영상에 몰두하는 딸이 어린 나이에 이상한 영상을 접하면 어떡하나 덜컥 겁부터 났다. 마침 자녀 휴대폰 사용을 규제할 수 있는 앱이 출시돼 이거다 싶었다.

더 큰 문제는 7살짜리 유치원생 아들이다. 남자 아이들은 나쁜 말을 더 쉽게 배운다. 집에 놓고 다니는 아이패드로 최근 ‘유치원 대통령’으로 떠오른 한 BJ 영상을 수시로 보는가 싶더니 어디서 배워 와 내게 “뒷통수 치지 말라”는 말을 해 기함했다. 아이패드는 감시 앱도 깔지 못해 서류 가방에 아이패드를 숨겨 출근한 적도 있다.

물론 아이들은 나를 볼 때마다 볼멘 소리다. 다 너희들 위한 거라는 말로 밀어 붙였지만 사생활 침해라고 투덜거리는 딸, 친구들 다 보는데 왜 내게만 그러냐고 성화인 아들의 투정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에게 나의 관심과 보호가 지나친 건 아닐까.

직장에 치이고, 가정에서 공전(空轉)하는 평범한 요즘 아빠들이 털어놓은 각기 다른 속내에 대해 송해덕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빠도 자녀 돌봄에 반드시 참여해야 되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정작 아이의 발달 과정을 세밀하게 지켜볼 절대적 시간은 여전히 부족한 과도기 상황에 아빠들이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화 시대 통용되던 엄격한 아버지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가운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아버지상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는 어려움이 요즘 아빠들 고민의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김동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녀와의 대화를 통해 아빠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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