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드러머를 꿈꾸던 청년이 전설의 권투선수가 돼 돌아왔다. 영화 ‘위플래쉬’(2015)에서 신들린 드럼 연주로 단숨에 한국 관객의 눈에 들었던 배우 마일스 텔러(29)가 신작 영화 ‘블리드 포 디스’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왔다. 그의 첫 한국 방문이다.
텔러는 12일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위플래쉬’가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걸 잘 알고 있다”며 “신작 영화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해줘서 감사하다”고 들뜬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블리드 포 디스’는 세계적인 권투선수 비니 파지엔자의 실화를 옮긴 영화다. 최정상의 자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권투는커녕 걷는 것조차 불가능할 거라는 진단을 받고도 불굴의 의지로 다시 링 위에 선 파지엔자의 이야기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화려한 컴백’이라고 일컬어진다. 텔러가 파지엔자를 연기하고, 애론 에크하트(48)가 파지엔자의 코치 케빈 역을 맡아 연기 호흡을 맞췄다. 에크하트는 영화 ‘다크 나이트’의 ‘투페이스’ 하비 던트 역과 현재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다. 두 주연배우와 연출자 벤 영거 감독(43)이 함께 부산을 찾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텔러의 연기다. ‘위플래쉬’에 이어 ‘블리드 포 디스’에서도 한 인간의 순수한 열정과 집념을 몰입도 높은 연기로 빚어냈다. 텔러는 “파지엔자를 연기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짚었다. 주연배우로서 그가 바라본 파지엔자는 “따뜻한 마음과 남성적인 매력,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전쟁터에서 총알이 날아들면 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적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죠. 파지엔자가 그런 사람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25세나 많은데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더라고요.”
텔러는 “아직 생존해 있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파지엔자의 경기를 본 사람도 많을 테니까”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8개월간 영화를 촬영하면서 최대한 파지엔자의 실제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려 했고,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영거 감독은 “파지엔자도 한국에 함께 왔더라면 좋았겠다”며 존경과 애정을 드러냈다.
텔러와 에크하트, 영거 감독은 “이 영화가 취업난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의 젊은 관객들에게 격려와 응원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빼놓지 않았다. 에크하트는 “관객에게 힘을 주는 게 바로 영화가 해야 할 일”이라고도 했다.
한국에서 특히 사랑 받는 텔러는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과 영화 ‘인서전트’에 함께 출연했고, 친한 친구 중에는 K팝 관련 일을 하는 한국 동포도 있다”며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재미있게 본 한국영화로 꼽으며 “앞으로도 한국 관객을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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