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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가득했던 부산영화제에 올해는 '비감'만

입력
2016.10.1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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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부산국제영화제 티켓 판매소의 모습. 최재명 인턴기자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부산국제영화제 티켓 판매소의 모습. 최재명 인턴기자

바닷가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카메라는 소나무를 바라보다 바다로 향했고 별들로 가득한 하늘을 비췄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상징하며 영화 상영 때마다 스크린에 투영되는 영상은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했다. 소나무처럼 풍설을 꿋꿋이 견뎌내고 계속 푸르겠다는 부산영화제의 각오로 읽혔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 상영으로 시작된 거친 시련을 떠올리게 했다.

2010년만 해도 부산영화제 영상은 유쾌하고 재기가 넘쳤다. 김동호 당시 집행위원장을 주인공 삼은 애니메이션이 보는 이들의 마음에 온기를 전했다. 부산영화제의 위상이 매년 빠르게 상승하고, 세계 7대 영화제라는 호칭까지 얻을 때였다. 더 비상할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했다. 개최 불가능이라는 낯선 형용까지 동원된 올해 영화제의 역경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지난 주말 부산영화제 현장은 냉랭했다. 태풍이 야외무대를 휩쓸고 가 행사를 열 수 없게 된 해운대 주변이 특히 예년과 달랐다. 영화학도와 젊은 관객들이 내뿜던 열기는 사라졌다. 유명 술집은 여전히 영화인들로 가득했으나 떠들썩한 기운은 약했다. 몇몇 영화인들은 ‘#SUPPORT BIFF’와 ‘#SUPPORT MR.LEE’가 새겨진 스티커를 배포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을 주장하며 올해 부산영화제 보이콧을 선언한 영화인들의 정서가 담겨 있었다. BIFF는 부산영화제의 영문 약자이고, MR.LEE는 올해 사실상 해촉된 이 전 위원장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썰렁해진 영화제에서 전에 없던 영화인들의 분열까지 보는 듯했다. 불 지른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피해자들이 불에 탄 집을 어떤 식으로 복구해야 할지 대립하는 형국이라고 할까.

부산영화제의 중심 역할을 하는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한 곳을 찾았을 때도 쓸쓸한 기운이 몰려왔다. 이 전 위원장 등 부산영화제 주요 인물들이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받은 훈장이나 감사패 또는 기념품이 3층 한 구석에 전시돼 있었다. 이 전 위원장이 중앙대 퇴직 시점에 받은 감사패가 눈에 띄었다. 2012년 이 전 위원장은 17년 동안 재직했던 중앙대 영화학과를 떠나 부산 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학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부산영화제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올해 영화제의 상영작들 면면은 어느 해 못지않다. 2016년의 영화로 기억될 세계의 수작들이 부산의 스크린에서 명멸하고 있다. 남은 자들의 놀라운 분투가 빚어낸 결과다. 객석을 채운 관객들의 애정에서도 옅은 희망을 감지한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 문화 축제이자 아시아의 간판 영화제였던 부산영화제는 여전히 위태롭다. 다시 살려내야 할 당위는 있으나 악재가 적지 않다. 매년 설렘이 함께했던 부산에서의 취재가 올해는 비감으로 가득했다. 갈등의 실타래가 풀리고, 큰 희망이 깃든 내년 영화제를 소망한다.

부산=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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