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률 상승세인 한국과 달리
日, 대학생 취업률 90% 넘는 추세
코트라 글로벌 인턴프로그램 등
한국 청년과 기업 사이 연결 도와
영어 성적 중시하는 日 기업 특성
비전공자도 IT계열 등 장벽 넘어
작년에만 4000명… 총 4만명 규모
격차 줄면서 경제적 매력은 감소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9.2%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최고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5~29세 청년실업률은 2013년 이후 3년째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사정이 좀 다르다. 한해 80만명씩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대학생 취업률이 90%를 넘기고 있다. 젊은 일손이 부족하자 한국인 청년을 채용하려는 일본 기업들도 급증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문화가 한국과 크게 다르긴 하지만 실제 일본 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스펙 쌓으려 연수 갔다 현지취업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10일 저녁 만난 윤재철(29)씨는 시원시원한 외모에 한창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듯했다. 문화장벽은 있지만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요코하마(橫浜)의 정보기술(IT)기업 ‘아도유니크’에 취업했지만 원래는 IT와 관련이 없는 비전공자다. 국내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윤씨는 한국 내 취업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수소문했다. 그러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운영하는 글로벌 인턴프로그램을 발견해 작년 4월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합격했다.
윤씨는 “일본취업 때문에 지망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작년 6월 도쿄 신주쿠에 도착해 동료합격자 19명과 함께 3개월의 IT교육연수과정에 입학하게 됐다”며 “3개월 후 8개 회사에서 면접을 봤는데 저는 비전공자여서 취업이 되지 않았다”고 사연을 들려줬다. 무턱대고 스펙만을 위해 도전한 결과였다. 그러나 슬슬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는 것보다 전공인 일본어 실력을 살려 현지에 정착해보자는 오기가 생긴 것이다.
윤씨는 “일어 전공을 하면 보통 번역일을 하거나 일본관련 무역회사에 취업하는 게 흔하지만 뭔가 새로운 분야의 기회가 눈앞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국을 왔다갔다 하며 정보처리기사를 따기 위해 밤샘 시험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반전이 찾아왔다. 행운이 겹친 것은 평소의 당당한 이미지 덕분이었다. 면접에서 떨어졌던 일본기업체 한 곳의 사장으로부터 3개월 만에 뒤늦은 합격통지가 왔다. “당신은 IT업무가 부족하지만 일본 젊은이들에겐 드문 ‘야루키’(하려는 의욕)가 있어 보이니 함께 일해보자”는 것이었다.
시간약속 안지키면 용서안돼
윤씨가 일하는 회사는 직원이 40명 정도 있는 물류시스템 개발 중소기업이다. 예를 들어 택배상자들이 자동적으로 분류되는 컴퓨터제어방식 등을 만드는 회사다. 요즘은 한창 바쁠 때라 오전 10시에 출근해 밤 9시~10시까지 근무하느라 고되지만 12월부터는 ‘잔업(야근)수당’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한달 월급은 21만8,000엔(약 235만원). 그는 “처음 일본기업에 취업하면 돈은 당장 생각만큼 많이 받지 않는다. 일본에선 3년은 지나야 급여체계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3년은 기본으로 지켜보고 맞다 싶으면 정식 사원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윤씨는 일본의 특이한 직장문화로 시간약속을 꼽았다. “일이 서툰 것은 괜찮아도 지각이나 시간약속을 못 지키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 전화예절도 중요하다. 외부에 보여지는 회사의 첫 이미지가 전화대응이기 때문이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윤씨는 또 일본 사회초년병 암기사항으로 ‘호렌소 원칙’을 소개했다. “보고와 연락, 상담의 첫 글자씩 붙인 것인데 팀제로 단합하고 혼자 결정하지 말고 선배와 고민과 조언을 주고 받으란 의미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달 100만원씩 저축하는 청년도
일본의 한국인 취업자는 4만명 수준으로 지난 한해만 4,000명이 넘게 늘었다. 물론 윤씨의 조언대로 한국과 일본의 경제격차가 크던 과거와 달리 현재 일본의 월급수준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지난 9일 도쿄 후타고타마가와(二子玉川)에서 만난 강명수(25)씨는 악착같이 월급을 모아 월 100만원씩 저축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강씨는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기업인 라쿠텐에서 프로그래머로 올 4월부터 일하고 있다. 지방 전문대 컴퓨터정보학과를 나와 교내 일본취업반에 들어갔지만 취업에 성공한 이유는 사실상 영어실력 때문이었다. 착실히 닦은 영어실력으로 토익800점에 도달했고 유달리 영어를 중시하는 라쿠텐의 눈에 띈 것이다. 강씨는 “라쿠텐은 사내공용어가 영어”라면서 “한국에서 토익 800점은 별거 아니지만 일본에선 높은 편이다”라고 소개했다.
일본 기업 취업은 보통 코트라나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무역협회가 서울에서 일본취업박람회를 열거나 해외연수ㆍ취업을 연결해주는 경로가 있다. 강씨는 학교에서 초청한 일본기업들 면접을 봐서 합격한 경우다. 강씨 역시 외모에서 강한 근성이 느껴졌다. 그는 “일본 사람들은 쭈뼛쭈뼛 윗사람에게 물어보는데 저는 한국에서 친구들에게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선 더 좋아한다”며 껄껄 웃었다.
라쿠텐에서 받는 월급 중 세금 떼고 월세 75만원, 휴대폰비 5만원 빼고 나머지를 저축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밥 세끼를 다 해결해주고 혼자 사니 100만원씩 저축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씨는 한국에서 회식에 강제로 끌려가는 직장문화가 싫다면 일본이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오히려 자신은 한국식 문화가 그립다고 한다. “한국처럼 함께 고생하고 일 끝나면 우르르 나가 맥주 한잔 하고 싶은데 여긴 그런 게 없어 아쉽다. 그래도 헬조선 탓할 게 아니라 해외로 눈을 돌리면 기회는 많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코트라 도쿄무역관 강민정 과장은 “IT분야를 제외하고도 관광객 증가에 따른 호텔이나 여행업계, 해외거래처 발굴에 주력하는 일본 대기업들이 외국어능력이 뛰어난 한국 청년들을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과장은 “다만 일본 기업에는 통근수단, 직무수당, 육아수당 등이 많지만 최근엔 능력에 따라 결정하자는 의견이 많아 가족수당, 주택수당 등은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경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황환선 도쿄사무소장은 “일본 취업이 향후 더 늘어날 것”이라며 “현재는 IT기업 취업이 50%이고 일반기업 사무직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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